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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원효의 정토사상

by 회심사 2019. 7. 16.


Ⅰ.원효의 정토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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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자라면 출가자이든 재가불자이든 누구나 成佛 내지는 極樂往生을 바랄 것이다.
      원효의 정토사상은 왕생에 관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재가신자의 信心에 근거한 마음의 자세와 왕생을 연결시켜, 범부중생의 구제의 방편을 현실적으로 제시한 것이 그 가장 주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원효의 정토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본론

      Ⅰ.衆生心
      원효 철학의 시작과 끝은 一心이고 , 一心은 곧 衆生心이다.
      그러나 중생심에는 두 가지 의 양상인 出世와 世間을 분별하는 긴 꿈이 들어있다.
      이 꿈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환상에 불과하다.
      이 환상의 세계를 벗어나면 穢土와 淨土, 生死와 涅槃이라는 헛된 집착 이 사라지게 된다.
      생사와 涅槃의 非一非異性에 대한 설명은 대승불교의 주요 주제가 되어온 것인데, 원효는 이 문제를 자기 저서의 앞부분에 항상 둠으로써 철학적 주제의 원천으로 삼는다.

      『宗要』의 大意 내용은 무론 『無量壽經』의 解題가 주제가 되겠지만, 『無量壽經』의 해제보다는 『無量壽經』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 즉 중생이 往生할 수밖에 없는 根據와 往生을 위해서 중생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 마음 자세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起信論疏』에서는 중생의 마음을 바다에 비유하는데, 이러한 비유는 중생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바닷물은 모든 이에게 그 맛이 평등하므로 一味이며, 모든 물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닷물은 항상 그 맛을 함유한 채 寂靜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풍랑에 의해 요동치는 게 다반사이다.
      여기서 풍랑은 煩惱요, 거친 바닷물은 衆生心이다.
      비롯 바닷물이 거칠게 움직여도 바닷물 맛의 속성이 변한 것은 아닌 것이다.
      바닷물의 一味는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변치 않는 佛性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중생심에는 변치 않는 불성이 있지만 번뇌의 풍랑에 잔잔할 날이 없는 것이다.
      바다는 불성과 중생심의 非一非異性을 잘 이해시키는 주요 수단으로 원효가 사용하는 것이다.

      『起信論別記』에서도 중생심을 허공과 바다로 설명한다.
      여기서 대중의 體를 설명하는데, 太虛와 같이 넓어서 사사로움이 없고, 巨海와 같아서 지극한 평등함(公)이 있다. 고 하여 허공과 바다로 그 體를 비유하는 것이다. 『起信論別記』에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同體智力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큰 바다는 일체의 모든 무의 근원지가 될 뿐만 아니라, 그 맛이 평등하여 모든 이에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고, 太虛는 無緣大悲心을 일으켜 救濟의 차별성을 배제하기 위한 표현이다. 『宗要』의 大意도 한참 앞에 쓰여진 『起信論別記』의 중생관이 그대로 보이므로 그의 철학적 일관성이 잘 나타나 있다.

      『宗要』에서도 근원으로서의 바닷물과 평등성으로서의 허공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 두 가지의 예는 중생심이 불성을 근원적으로 함유하고 있다는 것과 누구도 예외 없이 불성이 顯現될 수 있다는 평등성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원효가 이 두 가지를 『起信論疏, 別記』 와 같이 설명하는 것은 『無量壽經』의 救濟 思想의 根據와 그 대상이 결코 대승의 일반 사상과 다를 바 없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宗要』의 대의는 크게 8가지로 분절할 수 있겠다.
      중생심, 일심의 생사와 열반, 대중과 一心歸原, 釋迦世尊의 가르침, 『無量壽經』의 프로필, 果德의 莊嚴과 十八圓淨, 阿彌陀國 土의 描寫, 無生의 生과 無相의 相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보여준 바와 같이 원효의 정토교학은 정토교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중생심과 일심의 연관성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은 『宗要』가 어떻게 서술될 것인가에 대한 주요한 모티브를 제공해 준다.
      원효의 많은 저서들 중의 序文들은 "그러하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는", 不然之大然과 無用之大用의 論法을 빠짐없이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一切法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실천적 수행관이 완벽하게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宗要』에서도 一切法에서의 超越을 一心이라고 하나, 일심이라는 자체도 집착의 대상은 아니며, 언어의 부자유스러움에의 한계로 그냥 일심이라고 할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宗要』의 중생심에 대한 설명은 『起信論疏』의 二門觀을 그대로 인용한다.

      생멸을 집착하는 범부는 네 가지의 길을 걷게 되는데, 앞의 두 가지는 생명의 길이고, 뒤의 두 가지는 眞如의 길이다.

      1.五濁에 빠져 그 흐름에 헤매고 구른다.
      2.깊은 고통에 빠져 헤매어 길게 흐른다.
      3.煩惱를 끊어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4.涅槃의 세계에 도달하여 영원히 寂滅한다.

      위와 같이 범부는 이문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도 결국은 큰 꿈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단지 범부의 聖道 과정을 표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一心의 입장에서 보면 涅槃과 寂滅의 세계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3과 4는 범부의 입장에서 보면 깨달음의 세계이지만, 깨달음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有漏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宗要』의 중생심은 범부의 입장에서는 生滅과 眞如로 나누어지고, 깨달음의 입장에서는 不可信說, 不可思議이다. '대의'중에서 긍정적 측면의 중생심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용어는 '歸原大覺'이다.

      큰 깨달음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다.
      "큰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원효의 적절한 해석이 아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얻는다는 것은 말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생 의 마음에는 이미 大覺이 있으며, 단지 그 마음으로 돌아가서 참된 자기를 찾는 것일 뿐이다.

      『起信論疏』에서는 『起信論』의 '歸命'을 주석하여, "귀명이란 還源의 의미이다.
      왜냐하면 중생의 六根은 일심에 종속되어 일어나는데, 자기의 根源을 배반하여 六塵에 흩어져서 날뛰는 것이다. 이제 목숨을 들어 六情을 모두 모아서 本來 一心의 根源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歸命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중생심을 一心二門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과 일심귀원의 내용은 『宗要』가 『起信論疏』의 논리 강조와 기본 사상에 그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심이문에 의한 중생심의 해석은 중국 불교에서는 찾을 수 없는 원효의 독창적인 정토관의 시작이다.
원효의 정토사상.mp3
원효의 정토사상.mp3
2.67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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