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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地藏)신앙의 이해 2-제 4절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by 회심사 2020. 8. 16.


지장(地藏)신앙의 이해 2-제 4절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제 4절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지장보살은 앞서 살펴 본 대로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미륵 부처님이 출현할 때까지 56억 7천만년 동안 이른바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무불시대의 교주'이다.
      지장보살은 이처럼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에 육도에 몸을 나투어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케 하겠다는 비장한 서원을 세운 대원대비(大願大悲)의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특히 지옥의 극심한 고통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어두운 세계의 교주(幽明敎主)' 또는 '남쪽을 교화하는 주존(南方化主)'으로 신봉되고 있다. 이런 지장보살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지장의 뜻

      지장(地藏)은 산스크리트어 '크시티가르바(Kisitigarbha)'를 한문으로 번역한 말이다. 크시티가르바란 '대지(大地)의 태(胎)' 또는 '자궁(子宮)'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땅을 감싸고 있는 보살이란 뜻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바로 땅의 보살이며 대지(大地)의 보살이다.
      인간을 비롯해서 자연 만물을 지탱하고 있는 대지는 많은 덕을 갖추고 있다.
      모든 생물을 생장발육 시키며, 모든 중생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대지이다. 바로 이런 대지가 가진 덕성을 일곱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을 '칠지의(七地義)'라고 한다. 칠지의는 지장보살의 위덕을 대지가 가진 위덕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1) 지(地): 칠지의(七地義)
      능생의(能生義) - 대지는 능히 일체의 모든 생물을 생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능히 일체 모든 중생을 설법으로 성숙시키는 것을 말한다.

      능섭의(能攝義) - 대지는 일체 모든 생물을 섭수하여 자연 속에서 편안히 쉬게 한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일체 묘법을 가지고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큰 깨달음의 성(大覺城)안에 편안히 쉬게 함을 말한다.

      능재의(能載義) - 대지는 일체의 광식물들을 능히 떠받치고 있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일체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실어 저 피안(彼岸)의 언덕에 이르게 함을 말한다.

      능장의(能藏義) - 대지는 능히 일체 만물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묘한 선행을 통해서 모든 중생들을 악으로부터 잘 보호함을 말한다.

      능지의(能持義) - 대지는 능히 일체 만물을 잘 보존하고 지킨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묘한 선행을 통해서 모든 중생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는 것을 말한다.

      능의의(能依義) - 대지는 일체만물의 의지처가 된다.
      이처럼 지장보살도 모든 중생들의 든든한 의지처가 됨을 말한다.

      견뇌부동의(堅牢不動義) - 대지는 성품이 견고하고 실다워서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원을 세운 지장보살의 심성도 견고해서 감히 파괴되지 않음을 말한다.

      2) 장(藏): 삼덕장(三德藏)

      지장보살 할 때 장(藏)은 비밀, 포용, 함육(含育)의 뜻을 가지고 있다.
      지장보살은 깊은 선정 가운데서 일체중생의 잘못을 멈추게 하고 지극한 선에 나아가 중생들을 교화하여 올바르게 성숙시키기 때문에 '장(藏)'이라고 한다. 장에는 지장보살님이 '갖추고 있는(藏)' 세 가지 덕성을 설명하고 있다.

      즉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를 갖추고 있는 '지덕(智德)', 모든 무명과 번뇌, 그리고 고통을 끊는 '단덕(斷德)', 모든 중생들에게 대원의 은혜를 베푸는 '은덕(恩德)'이 바로 지장보살에게 갖추어진(藏) 세 가지 위덕이다.

      이처럼 '칠지의'와 '삼덕장'을 갖추신 지장보살은 철저한 비원(悲願)을 세우고 지옥을 항상 계시는 곳으로 삼고 육도(六道)를 능히 교화(能化)하시는 자존이다.

      2. 성불을 포기한 보살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한 생에 닦은 수행의 결과로만 부처님이 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부처님과 같은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랜 과거 전생부터 수많은 생을 거듭하며 무수한 보살행과 수행을 닦고 닦아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신 것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부처님이 되기 전에 깨달음을 위해 보살행을 행하고 수행하던 때의 이야기를 '전생담(前生談)' 이라고 한다.

      즉 '전생 이야기'란 뜻이다. 물론 지장보살도 지장보살이 되기까지의 전생담이 있다. 지장보살의 전생담을 살펴보면 자신이 지은 죄업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지옥중생들을 모두 다 구제하지 않고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비원을 세우고 계신다.

      "이 뒤로 백 천만억겁 동안에 세계에 있는 지옥과 삼악도(三惡道)에서 죄로 고통 받는 중생을 맹세코 제도하여 지옥·축생·아귀 등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와 같이 죄의 업보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 성불한 뒤에야 제가 바야흐로 정각(正覺)을 이루겠습니다."《지장보살본원경》

      이처럼 지장보살은 스스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비원(悲願)을 세우시고 모든 중생이 다 구제되지 않는 한 자신도 성불하지 않겠다고 성불을 유보했기 때문에 '대비천제(大悲闡提)' 또는 '천제보살(闡提菩薩)'이라고 불린다.

      천제란 다른 말로 '일천제(一闡提)'라고도 하는데 '단선근(斷善根)' 혹은 '신불구족(信不具足)'으로 번역한다. 즉 선근을 끊고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천제란 성불할 수 없는 중생을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은 왜 성불하지 못하는가? 지장보살은 자신에게 허물이 있어 성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구제의 비원을 세워서 열반에 들지 않고 스스로 악취에 머무는 것이다.

      이처럼 큰 원을(大願) 세워서 스스로 성불을 포기한 보살이기 때문에 대비천제라고 부른다. 또 모든 중생들이 다 구제된 지극히 선한 세상이 아니면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이를 '극선불성불(極善不成佛)'이라고도 부른다.

      3. 업(業)을 소멸시키는 보살

      지장보살은 숙업(宿業-오랜 전생에서부터 지어 온 무수한 업)에 의하여 육도를 윤회하며, 삼악도에 빠져 죄고를 받는 중생들의 교주이다. 이 세상 모든 중생의 운명은 업(業)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 불교의 업보(業報) 사상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지은 업보(業報)에 의해서 결정지어진 죄고는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은 업보는 자신이 받는다는 것이 바로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과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업설에 의하여 선한 행을 하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한 행을 하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는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가 인과응보의 기본적인 법칙이다.

      지장보살의 구제력을 높이 선양하고 있는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에서도 인과의 이치를 믿지 않는 것을 무인(無因)론 이라고 비판하고, 인과를 부정하는 자들을 일컬어서 단멸론(斷滅論)자라 비난하며 목숨을 마친 뒤에는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한번 지은 업보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만약 불법을 믿지 않고 인과법을 믿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 인과의 사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수많은 생을 통해 지은 이 인과(因果)의 사슬을 끊고 전생에 지은 모든 나쁜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견고한 정진과 서원의 힘으로 말미암아 업(業)의 사슬을 끊을 수 있으며, 모든 악업을 참괴하고 참회하는 자는 전생에서 지은 일체의 악업을 모두 소멸하게 되어 남음이 없게 된다."《대승대집지장십륜경》

      인과의 사슬이 무겁지만 견고한 정진과 서원의 힘으로 그 업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은 악업을 모두 참회하는 자는 일체의 모든 악업을 소멸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계신다. 이처럼 스스로 참회하고 견고한 정진을 통해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수승한 중생은 이렇게 참회와 정진을 통해 업장을 소멸시킨다.

      그렇다면 스스로는 자신의 악업으로 인한 죄장(罪障)을 감내하지 못하는 말법시대에, 그것도 삼악도에 빠진 하근기 뭇 중생들은 어떻게 이 인과의 사슬을 벗어나고 업보를 멸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지장보살의 불사가의하고 수승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과 비원에 의하여 구제될 수 있다고 지장경은 설한다.

      4. 근기에 따라 제도하는 보살

      지장보살은 육도(六道)에 윤회하는 중생을 성숙시키고 구제하기 위해 중생들의 근기에 알맞게 몸을 나투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그릇에 따라 무서운 마왕의 모습도 필요하고 자비로운 보살의 모습도 필요하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의 서품에 보면 지장보살은 각기 다른 중생들의 수준에 따라서 대범왕과 세계를 주재하는 신인 대자재천의 몸에서부터 염마왕의 몸, 심지어는 지옥졸의 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몸을 나투어 설법하고 있다.

      "이 선남자(지장보살)는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이 불가사의한 온갖 공덕과 견고한 서원과 용맹정진을 성취하고는, 유정들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시방세계에서 어떤 때는 대범왕(大梵王)의 몸을 나타내어 유정들을 위해 그 근기에 알맞게 설법한다.

      혹은 대자제천의 몸이 되고, 혹은 염마왕의 몸, 지옥졸의 몸이 되며, 혹은 지옥의 모든 유정들의 몸이 되는 등 이같이 무량 무수한 다른 종류의 몸이 되어 저 유정들을 위하여 그 근기에 알맞게 설법하고, 그 응하는 바에 따라 그들을 삼승의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편안히 둔다."《대승대집지장십륜경》

      이처럼 지장보살은 중생구제를 위해 한 가지 모습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중생의 근기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나투어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신다. 요즘말로 하면 눈높이 방식으로 중생들을 제도하신다고 볼 수 있다.

      《지장보살본원경》'분신집회품'에 보면 부처님이 지장보살에게 수기를 내리시고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각각 차별이 있으므로 여러 몸을 나투어 제도하여 해탈케 한다."며 분신(分身)의 까닭은 중생의 근기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지장보살이 서원하시기를 "제가 나타낸 몸이 백 천만 억 항하사 세계에 가득하여, 한 세계마다 백 천만 억 몸을 나투고, 한 화신(化身)마다 백 천만 억 사람을 제도하여, 삼보께 귀의 공경하게 하며, 나고 죽음을 영원히 여의고 열반의 기쁨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다음 세상의 악업 중생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장보살본원경》

      5.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투신 보살

      지장보살의 형상은 일반적으로 삭발한 머리에 석장을 짚거나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 등 다른 불·보살상이 고대인도 귀족들의 복식을 본떠서 화려하게 조성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장보살은 평범한 중생의 모습에 가까운 소박한 모습을 하고 계신다.

      "그 때 지장보살마하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들과 함께 신통의 힘으로 성문의 모습을 하고 남쪽으로부터 왔다. 참 대사인 지장보살은 두타의 공덕을 모두 갖추고 성문의 색상을 나타내고서 부처님께 와서 머리를 조아리다. 여섯 가지 신통으로 세간을 비추면서 그는 지금 곧 여기 오리니 용맹스런 그의 이름 지장으로서 출가의 위의를 나타내었데."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이처럼 지장보살은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투고 계신다. 이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스스로 중생구제를 위해서 성불을 포기한 '대비천제(大悲闡提)'의 '천제보살(闡提菩薩)'로서 뭇 중생들의 처소인 세간에 스스로 머물면서 죄고에 빠진 육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지장보살의 본원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이런 모습은 언제나 고통 받는 중생들과 함께 하겠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사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승불교가 발생하면서 보살은 불교신앙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히 부파불교 시대의 이상적인 수행자상인 성문(聲聞)에 대해서 경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대립은 지장보살에 이르러서 조화롭게 화합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대비(大悲)와 대원(大願)이 크고 광대하기 때문에 성문과 보살이라는 이승(二乘)의 대립을 탈피한다. 성문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살과 성문을 융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중생구제를 위해서라면 모습(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지장보살의 특징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대승의 보살이면서도 성문의 모습으로 나투고 계신다. 그것은 안으로는 보살의 대행(大行)을 가지고 계시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보다 친근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투시는 것이다. 이처럼 불·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일부러 성문의 모습으로 나투시는 것을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나툰 성문'이라는 뜻에서 '응화성문(應化聲聞)'이라고 한다.

      6. 인연 없는 중생을 구제하시는 보살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지장보살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無佛時代)'에 중생을 교화하는 교주로 불린다. 이는 곧 현세의 부처님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부처님이 오시기 전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에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란 뜻이다.

      흔히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년 후에 오신다고 했으므로 그 기간 동안 육도(六道)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 바로 지장보살님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라. 이름을 지장이라고 하는 보살마하살이 있다. 그는 이미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대겁에 다섯 가지가 혼탁한 악한시대(五濁惡世)의 '부처 없는 세계(無佛世界)'에서 유정(有情)을 성숙시켰다." 《지장보살본원경》

      "이때 지장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서 백 천만 억 세계에 두루 이 몸의 형상을 나투어 일체업보중생을 구하여 빼내겠습니다. 만일 여래의 큰 자비의 힘이 아니면 곧 이와 같은 변화를 짓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또 부처님의 부촉을 받았으니, 아일다(미륵불)가 성불하여 올 때까지 육도중생을 제도·해탈케 하겠습니다. 그러니 세존께서는 원컨대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장보살본원경》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무불시대'란 오탁악세(五濁惡世)로 인해 중생들의 근기가 둔하여 수행다운 수행을 하는 이가 없고 깨달음을 얻는 이도 없고, 겨우 부처님의 정법만 남아있는 시대를 말한다. 하지만 급기야는 법이 소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말법시대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지장보살님은 말법시대에 근기가 낮아서 불법에 귀의하지 않고 방황하는 인연 없는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다.

      그러나 '무불시대'란 단순히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라는 시대적인 의미도 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부처님의 가피가 미치지 않는 무자비한 외진 땅을 가리키기도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법을 믿지 않고 온갖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방황한다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이 바로 오탁악세인 것이다. 지장보살님은 그같이 불법과 인연 없는 중생마저도 모두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보살님이다.

      7. 사대보살

      지장보살은 대승불교의 4대보살 가운데 한 분이다. 사대보살이란 큰 지혜로 무명의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이끄시는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舍利菩薩)', 한량없는 행원으로 열 가지 큰 행원을 세우신 '대행보현보살(大行普賢菩薩)', 큰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구제하는 '대비관세음보살(大悲觀世音菩薩)',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원을 세우신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 바로 불교의 4대보살이다.

      이 가운데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지 않고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그 서원이 크고 광대하기 때문에 지장보살의 서원을 '대원(大願)'이라고 하며 지장보살을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8. 아미타 신앙과 지장신앙

      아미타불은 흔히 극락이라고 하는 서방정토에 계시는 부처님으로 중생을 극락세계로 맞이하시는(來迎) 서방정토의 교주이다. 이에 비해 지장보살은 서방과는 반대편인 동쪽의 지옥에 계시면서 지옥 중생들을 구제하는 유명교주이다.

      그래서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은 정 반대되는 세계의 교주인 셈이다.
      아미타불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극락에 계신다면 지장보살은 고통의 현장 바로 그 곳에 고통 받는 중생들과 함께 계신다.

      지장신앙의 사상적 근거가 되고 있는 지장 삼부경에서도 아미타정토 신앙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다. 결국 이 두 신앙은 서로 별개의 것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약 7세기 경 중국에 와서 아미타신앙과 지장신앙이 서로 결부되어 영가를 천도하는 신앙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용문석굴의 명문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장보살은 독립된 명부전의 주존으로 모셔져서 나름대로 독립성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아미타신앙과 지장신앙은 모두 망자를 제도하는 신앙이라는 공통성 때문에 점차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상호 보완적인 신앙으로 발전해 왔다.

      이는 부처님을 모시는 형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곧 지장보살님이 지옥중생을 제도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면 서방정토의 교주이신 아미타불이 맞이하는(來迎)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결국 아미타신앙과 지장신앙은 죽은 영가를 천도한다는 측면에서 두 신앙이 기능적으로 서로 통합되어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9. 관음신앙과 지장신앙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은 우리나라 불교의 대중 신앙을 이끄는 두 축으로 발전해 왔다. 관세음보살은 살아있는 현세의 이익을 수호하는 보살로 신앙되고, 지장보살은 사후 세계의 교주로, 지옥중생의 구제자로, 망자 천도의 길잡이로 인식되어 왔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관세음보살은 11면 관세음, 마두관음 등 다양한 변화와 화려하고 아름다운 전형적인 보살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장보살은 수행자인 성문(聲聞)의 모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 관음보살은 곧 성불하여 부처님이 될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이지만 지장보살은 영원히 고통 받는 중생 곁에 계시면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대비천제(大悲闡提)' 즉 성불을 보류한 천제보살로 신앙되어 왔다.

      이처럼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은 서로 다른 영역을 가지고 신행되어졌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사의 가장 중요한 두 테마를 중심으로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되어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불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짐으로서 두 보살님은 현세의 이익과 사후의 구원을 담당하는 보살로 신앙되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