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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부처님 가르침은 공식과 같다.-청화스님

by 회심사 2022. 1. 18.


부처님 가르침은 공식과 같다.-청화스님
    그런 지혜와 수행에 대해서 우리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이나 성자의 가르침은 공식과 같습니다.
    공식같이 명료한 것인데 우리 중생들이 어쭙잖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공식 같으므로 공식대로만 생활하면 됩니다.

    여러분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계정혜(戒定慧) 삼학도(三學道)라,
    계율을 잘 지키고, 참선(參禪) 염불(念佛)해서 우리 마음을 맑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다 보면 본래 생명자리,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가 훤히 밝아 온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참다운 해탈의 지혜가 옵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생명의 실상(實相) 자리, 생명의 본질을 미처 모르는 것이므로 우선은 부처님이나 또는 정통 조사(祖師)나 과거 선지식들의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선 중생들에 있어서는 믿음이 가장 소중합니다.
    우리가 아직은 진리를 체험도 못하고 우리한테는 소원한 그런 진리이기 때문에, 우선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신앙을 갖는 분들이 대체로 믿음이 부족합니다.
    저도 여태까지 그때그때 법문을 했습니다만, 믿음을 보다 더 역설을 해야 할 것인데 너무나 추상적으로만 흘러버렸구나, 이렇게 반성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수행론에 있어서 믿음에 대해서 역설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 불자님들 우리 인생 이것이 현상적인 존재입니다.
    현상이라 하는 것은, 실상이라는 우주의 본질로부터 인연 따라서 잠시간 모양을 나툰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있어서 현상(現象)과 실상(實相)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우리 중생들이 보는 이것은 자기를 위시해서 삼천 대천 세계 모두가 다 현상입니다.
    잠시간 존재하는 그런 현상에 불과합니다.
    영생불멸(永生不滅)한 진여실상(眞如實相)은 우리 중생은 볼 수가 없고 성자는 그 자리와 홀연히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영생불멸한 그 자리로부터서 인과의 법칙 따라서 잠시간 이렇게 저렇게 모양을 나툰 것이 현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 이래 우리 인류가 불행한 것은 무엇인가?
    기왕 우리가 인류로 태어났으면 같이 화합하고 같이 평등하고 같이 자유스럽게 살면 좋을 것인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분열과 반목과 싸움과 이런 것이 연속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한국도 단군 개조 이후에 얼마나 많이 싸웠습니까.
    병자호란이라 임진왜란이다 그 큰 것은 그만 두고라도 우리 민족이 외침을 당한 것이 900번 이상이라 합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서 이조 말엽에 당쟁을 하다 나라를 막아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당끼리 싸우는 것을 보십시오.
    물론 정당한 싸움도 있겠지만 대체로 보면 자기 당적인 이익, 이른바 집단적인 이익 때문에 싸운단 말입니다.

    그런 것이 모두가 다 우리가 인생과 우주의 참 뜻을 잘 못 보는데서 옵니다.
    참다운 지혜에 입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위급하고 급박한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현대 사회는 과거와 같은 시행착오를 지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무서운 핵무기 때문에 한 번 시행 착오를 한다고 생각할 때는 내 민족이나 또는 그때 민족이나 단 한 번에 망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무서운 때가 아닙니까. 지금 세계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핵 자체가 우리 지구 덩어리 몇 개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그런 위력을 낸다고 합니다.

    인류가 핵의 위기로부터 벗어나려면 영생불멸한 성자의 지혜를 따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칼이나 또는 소총이나 활이나 이러한 것들로 싸울 때는 좀 싸우게 된다 하더라도 죽을 사람 죽고, 산 사람 살겠지만 지금 역사적인 이 위기상황 핵 시대에 있어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한 번 시행 착오를 범하면 전 인류가 파멸되고 맙니다.

    따라서 지금만큼은 꼭 우리가 영생불멸한 성자의 지혜를 따라야 됩니다.
    안 따르면 파멸분입니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고 각 성자가 말씀하신 그 지혜를 남의 일로 생각을 마십시오.
    지혜에 따라서 살지 못하면 우리에게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행복 아닙니까.

    금생에 기왕이면 편히 살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것은 누구나 다 추구하는 바이지만 행복하지 못하단 말입니다.
    행복하게 못사는 것은 과거 전생에 우리가 잘 못 지어서 그랬을 것이고, 또 금생에도 태어나서 유치원 때부터서 대학가지 배운다는 것이 참 한심스러운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왜 한심스러운 일인가?
    우선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지금 혼란스러운 우리 대학가를 보십시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바른 지혜를 배우지 않고서 눈에 보이는 것, 아까 제가 말씀드린 허망 무상한 것에 불과한 그런 현상 이것이 사실로 존재한다. 이렇게 배웠단 말입니다.

    꿈이 사실로 존재하겠습니까?
    그림자가 사실이겠습니까?
    사실 우리 인간의 때 묻은 범부중생의 눈으로 보는 것은 모두가 꿈이요 허깨비요 그림자뿐입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범부의 때 묻은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착각뿐입니다. 전도몽상 이것을 참말로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인생고가 바로 따라 오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공식입니다.

    혹업고(惑業苦)라. 번뇌가 있으면, 그 번뇌에 따라서 입과 몸과 뜻으로 죄를 범하고,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범하면 그때는 틀림없이 인생고(人生苦)가 있습니다.
    공식입니다.
    따라서 인생고를 떠나고자 하면 그 역으로 무명심(無明心), 무지, 무명 때문에 고(苦)가 있는지라 우선 무지, 무명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무지, 무명을 떠나는 지혜(智慧)가 바로 부처님 지혜고, 예수의 지혜고, 공자의 지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석가는 위대한 성자이므로 그렇다지만 나 같은 중생이 어떻게 석가같이 행동을 할 것인가?
    부처님이나 예수 같은 성인들은 본래 잘나고 거룩하므로 그렇게 행동을 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 같은 중생은 그렇게 안 해도 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렁저렁 살지 않는가?
    이제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게 살았어도 그렁저렁 살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현대라 하는 그 무서운 시대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가사 하나의 음악을 두고 본다 하더라도 음악도 역시 지금 꽉 막혀 있습니다.
    왜 막혀 있는가 하면 요즘 재즈 음악이나 락 음악 같은 것을 보십시오.
    반은 미쳐서 이른바 광란 가운데서도 그런 광란이 없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 젊은 세대들이 좋다고 날뛰고, 또 젊은 소년, 소녀들은 그것에 미쳐 가지고서 이따금 아프기도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지금 광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이 시대는 바르게 못살면 자기도 망치고 나라도 망치고 다 망칩니다.
    그렇게 방정맞고 자극적인 음악을 좋다고 생각하는 우리 현대 젊은이들 마음은 거칠고 혼란되어 있습니다.

    물론 다는 아닙니다만 미술도, 저는 미술이나 음악을 잘 모릅니다.
    이른바 추상적인 미술형태, 선만 몇 개 찍찍 그어 놓고서 이걸 작품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런 것이 우리 같은 문외한들이 다 이해를 못하겠지요.
    그런대로 또 우수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만 그런 것은 모두가 다 우리 마음들이 불안스러운데서 그런 작품들을 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로 그 마음이 예수 같고 석가 같고 공자 같다고 생각할 때는 그런 예술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든 예술도 바른 영생해탈의 그런 차원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지금 꽉 막혀 있습니다.

    과학도지금 얼마만큼은 물질의 한계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을 떠나서 물질의 저 근본인 피안(彼岸)은 무엇인가?
    본바탕은 무엇인가?
    이것은 지금 과학도 모릅니다.
    과학은 내내야 시간성, 공간성에 가려 있는 그 범부 내에서만 아는 것이지 시간, 공간을 떠나버리는 것은 모른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