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정말로 다 빈 것입니다. 오직 하나의 생명 자체만 영생합니다.-청화스님
우리 마음이 시간이 있습니까? 공간이 있습니까? 우리 마음은 시간성도 공간성도 없는 순수한 생명 자체입니다. 따라서 제아무리 정밀한 전자 현미경을 놓고 본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이 보입니까? 그러나 좋다, 궂가, 행복하다 이렇게 느끼는 것은 우리 마음이 아닙니까. 아무리 몸뚱이를 아껴도 마음이 주인공(主人公)인 것이지 몸뚱이가 주인공은 아니지 않습니까. 따라서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지금 당면해 있는 모든 문제는 너무나 각박합니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문학도 말입니다. 오늘은 가장 길게 말씀을 드리려고 했던 것인데, 할 수 없이 짧게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날씨가 우리를 돕지 않아서 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제가 너무 잔 말씀을 안 드린다 하더라도 현상적인 문제라 하는 것, 이것은 모두가 다 몽환포영(夢幻泡影)입니다. 여러분들 다 아시지 않습니까.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이나 이 몽환포영의 말씀은 그런 경을 보신 분들은 모르신 분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다 실감이 미처 안 납니다. 가사 자기가 그런 설법을 하고서도 내려서면 그냥 눈에 보이는 것에 젖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제법이 비었다는 것에 대해서 참말로 체험적으로 실감이 안가서 그럽니다. 정말로, 정말로 다 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공부를 좀 해 보십시오. 해보셔서 우리가 기도를 모시나 참선을 하나 무아무중(無我無重)이라. 적어도 공부를 하셔서 무아무중이라는 경계를 좀 맛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아무중에 딱 들어가면 그때는 자기 몸뚱이가 아무 무리가 없단 말입니다. 꼬집어 뜯어도 아프지도 않는 것입니다. 삼매(三昧)가지는 미처 못 들어가도 기압을 하는 분들이 기압을 지르면서 칼로 자기 배를 찔러도 피가 안 나는 것이고, 칼을 빼면 다 오므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본래로 그런 것인데 우리 중생이 번뇌 때문에 몸에다 칼로 찌르면 피가 나고 도 아프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삼매에 들 때는 그런 것을 다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우리 중생 차원에서 있다고 보는 것이지 성자의 차원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당체(當體)가 즉공(卽空)이라, 분석을 한 뒤에 공이 아니라 이 몸 이대로, 이 책상 그대로 공이란 말입니다. 당체가 즉공이라는 그런 부처님 법문을 깊이깊이 음미하십시오. 색즉공(色卽空)이라, 색은 물질 아닙니까. 색즉공도 그와 똑같이 물질을 분석한 뒤에 깨고 부수고 해서 공이 아니라 물질 그대로 공이란 말입니다. 성자들은 그렇게 강도가 높은 금도 역시 금 그대로 공이라, 다이아몬드도 그대로 공이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번뇌에 가려서 그 자리를 미처 못 보는 것입니다. 왜 공(空)인가? 이것은 일체 존재가 물질이 아닌 영생불멸(永生不滅)한 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부터 인연(因緣) 따라서 잠시간 상(相)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간 상을 냈습니다. 상 이것은 본래(本來)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모르고 상관이 없이 영생불멸한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님 자리요, 불성(佛性)이고 법성(法性)이고 합니다. 거기서부터 잠시간 모양을 낸 것입니다. 잠시간 모양을 내서 그것이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 찰나도 머물고 있지를 않습니다. 찰나(刹那)라 하는 것은 일초의 75분지 1이라고 합니다. 그보다도 훨씬 짧은 동안도 고유하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도 머물지가 않거니 똑같은 것이 어디 있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까. 내 몸은 오늘도 같고 내일도 같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차고 있는 금시계는 오늘도 같고 내일도 같다. 우리 중생이 보아서 같은 것이지 순간순간 마멸되고 맙니다.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일체만유는 인연생, 인연멸이다. 그런 것을 우리 중생들이 세밀한 것을 잘 못 보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것은 인연생(因緣生)이라, 일체만유(一切萬有)가 인연생 아닙니까. 인연생인 그것은 원인이 무엇인가? 원인이 부처님입니다. 원인이 불성, 법성입니다. 우리 중생은 인연법 하면 그 연(緣)만 보는 것이지, 연도 중생은 확실히 못 봅니다. 근본 원인을 못 봅니다. 근본 원인을 보는 것이 성자입니다. '견성오도(見性悟道)'라. 뭘 깨닫는 것인가? 근본 성품(性品)을 깨닫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 성품 자리는 다 여러분들이 대체로 아시는 바와 같이 낳지 않고 죽지 않고 더하지 않고 덜하지 않고 이것은 항시 영생 그대로 있는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그러한 도리(道理)입니다. 상주불변하는 그런 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무상한 것이니까 다 허망하지 않은가? 이것도 저것도 공이 아닌가? 여기까지만 알 때는 이것은 허무주의(虛無主義)와 똑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은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우리 중생이 보는 것이 허망한 것이지 본래로 영생불멸한 진여불성이 언제 어느 때나 우주에 충만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히 느끼셔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불타관(佛陀觀), 부처님이 무엇인가? 하는 불타관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처님을 믿는 참다운 믿음입니다. 다시 되풀이해서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보는 것은 다 허망 무상한 것이고 본래로 없는 것이고 참말로 있는 것은 영생불멸한 진여불성이다. 부처님이다. 진여불성 이것은 생명의 본체입니다. 생명의 본체이니까 이것은 하나의 인격(人格)입니다. 제한된 인격이 아니라 무한한 인격입니다. 이 자리를 우리가 확실히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조 a하면 그냥 깨달아버린다. 화두(話頭)를 참구하면 단박에 되어버린다. 이런 식으로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지금 현재라 하는 것은 금생에도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잘 못 듣고, 잘 못 배우고, 잘 못 생각하고, 이런 번뇌가 우리 잠재의식(潛在意識)에 습기(習氣)로 해서 꽉 차 있습니다. 과거 무수생 동안에 더러는 지옥(地獄) 중생으로, 더러는 인간(人間)으로, 더러는 축생(畜生)으로 이렇게 흘러 내려 올 때 그때그때 생마다 지었던 업장(業障)이 지금 우리 의식에 또 꽉 차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의식이 염불(念佛) 좀 하고 화두(話頭)좀 하고 이런 걸로 해서 단박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물론 과거 전생에 많이 닦아서 선량하고 선근이 깊은 사람들은 그렇게 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특수한 사람뿐인 것입니다. 우리 인류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을 보십시오. 기독교 인구가 세계 18억이고, 불교 인구가 세계에서 10억이라. 이슬람도 10억은 넘는다고 합니다. 세계인 총의 반 이상이 넘으면서도 지금 혼란스럽고 죄악은 차근차근 더 짙어 가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제법 그럴듯하게 입으로만 한단 말입니다. 입은 알지만 몸으로는 못 느끼고 못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참말로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구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삿된 견해에 따라서 세속적인 관념에 따라서 그렁저렁 살다 고생고생 하다 반목, 분열, 투쟁만 하다가 죽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한테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선택을 잘하셔서 불자가 되었는데, 그렇더라도 그 선택한 진리(眞理) 밑에서 진실하게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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