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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

참부처의 자리,-서옹스님

by 회심사 2022. 2. 4.


참부처의 자리,-서옹스님
    험난한 세상에 신심으로 훌륭한 불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고, 중생에게 한량없는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사람에게는 감각이라고 할까, 욕망이 있어요.
    사람은 윤리도덕이라든가 여러 가지 이성이 있어서, 감각이나 욕망을 초월해서 문화를 창조하고 훌륭한 생활을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성만으로는 서로 대립과 분열, 알력을 면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근본바탕에는 생각이 끊어지고, 무의식도 생각 없는 자리도 초월한 부처 마음자리 영성자리가 있지만, 그 자리 또한 이성으로 여러 가지 작용을 합니다.
    우리 분별심은 바로 부처 마음자리가 작용한 것입니다.
    부처 마음자리 차원에서 보면 분별이 아니고 부처 마음자리 작용이 됩니다.

    또한 감각 욕망도 그것만으로 살면 자신도 타락하고 여러 사람을 해쳐서 살 수 없게 되지만, 부처 마음자리에서는 욕망도 부처 마음자리의 작용이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이성이나 분별심, 욕망이 모두 부처 마음자리에서 작용하면 원만하게 되어서, 모두 부처 마음자리의 한량없는 작용이 됩니다.

    그래서 <금강경>에 보면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색상이나 형상으로 보거나 혹은 음성으로 보려고 하면, 이 사람은 삿된 길을 행하는 것이 되어서 여래를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 자리는 형상도 초월하고 모든 감각도 초월하고, 또 이성 분별심도 초월했지만 초월한 그 자리가 모든 나라, 모든 땅, 모든 시간에 구현되어 거기에서 실현되어서 형상으로도 나타나고, 또 모든 행동이 거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고목나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생과 형상을 초월하고, 무의식까지 초월한 부처 마음자리가 모든 형상으로 나타나고, 여러 가지 분별도 하게 되고 조화되어서 모든 부처님 작용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도 "어떠한 사람이 부처님을 조성하면 한량없는 복을 받고 부처님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자리는 벌써 부처님 자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모래로 부처님을 만들거나 그리기만 해도, 또한 한량없는 복을 받고 부처님이 된다고 했으며, 이미 되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장난삼아 손가락으로 그리기만 해도 한량없는 복을 받고, 또 부처님한테 합장을 한다거나 한번 머리를 숙이거나 '나무불'을 하기만 해도, 또한 한량없는 복을 받아서 부처님이 되어버린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신심으로 부처 마음자리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면, 비록 조그마한 행동일지라도 부처 마음자리는 한량이 없음을 뜻합니다.
    '공생대각중 여해일굴발'이라는 말과 같이 이 허공 무변한 우주도 부처 마음자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무변한 우주도 허공도 부처 마음자리에 비하면 여해 일구발입니다.
    즉, 망망한 대해에 물거품 하나가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자리는 이와 같이 한량이 없어서 매우 소중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그러한 신심으로 일거일동을 하면, 한 가지 조그마한 행동이 한량없는 부처님 마음자리로 통해버립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한량없어서 조그마한 행동이 일체 행동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법화경>에서 "한량없는 복을 받느니라. 바로 부처님이 되어버리는 것이니라." 하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건 내가 견해의 망지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본지풍광, 우리의 본래면목, 참모습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자신과 신념을 가지고 살면 한량없는 복을 받고, 또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자리는 누구나 똑같습니다.
    또한 그 자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자비심이 우러나와 모든 사람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여, 부처님으로 모시는 것이 참으로 불사이고, 이것을 부처님 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가정이나 사회의 여러 사람이 다 부처님이니까
    거기서 우리가 부처님을 믿고 그 와 같이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로 봉사하면, 그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것이 그렇게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의 업장이 두텁습니다.
    업장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고통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그러한 업장을 이기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법당에 와서 부처님 등상불에 정성을 들이고, 염불을 많이 하고 예배도 많이 하고, 이와 같이 신심으로 함으로써 우리 업장이 녹아져서, 마음대로 복을 많이 받고 성불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과학문명시대는 욕심이 근본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현대는 산업시대라고 합니다.
    산업경제만 발전시키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욕심으로만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근본적인 욕심 위에 이성이 있고, 이성 위에 존중할 참가치가 있는 부처 마음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훌륭한 것을 잊어버리고 욕망으로만 살기 때문에, 요즘과 같이 험악한 세상이 되었으며 '인류가 전부 죽어버리겠다, 파멸을 면하지 하겠다.'며, 공포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위기를 해결하려면 부처 마음자리를 믿고, 부처 마음자리에서 과학문명을 다시 창조하고, 산업사회를 다시 건설해야 합니다. 거기에 행복하고 평화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옛날 스님의 법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한테 물었습니다.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
    "전리저(殿裏底)니라. 법당 안에 계신 분이니라."
    "법당에 모신 분은 흙으로 만든 등상불이 아닙니까?
    나는 참부처를 묻는데 어찌 흙으로 만든 등상불을 말합니까?"
    "아! 그렇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참부처입니까?"
    "전리저니라. 법당 안에 모신 분이니라. 법당 안에 있는 것이니라."

    이것이 큰 법문입니다.

    이것은 애들도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여러분은 잘못 알면 법당 안에 있는 부처님은 나무라든가 흙이라든가 등상불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부처 마음자리에서 보면, 모든 게 다 부처님 마음자리가 되어버려, 산은 산대로 부처가 되고 폭포소리는 부처님 법문 소리가 되어버립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법문을 해봤어요.
    십육응신아라한(十六應身阿羅漢)이라, 오늘 십육아라한을 조성했다.
    일신십육야중비(一身十六也重非)로다.
    그 십육아라한은 원래 근본 부처 마음자리 법신자리에서 응신으로 십육나한과 같이 되었는데, 우리 본래 면목 그 깊은데서 보면 근본 부처 마음자리 법신자리나 십육나한이나 둘 다 같습니다.

    금강정체시비외(金剛正體是非外)라,
    우리 금강정체 본래면목 본지풍광 참모습 자리에서 보면 시비 밖이라고 했는데, 이 시비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시비가 아니고 거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작조아명 무료 시로다, 그저 까치가 지저귀고 또 까마귀가 우는 소리 그칠 때가 없도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이건 말하자면 본지풍광 차원에서 한 말이라 뜻이 깊습니다.
    이러한 심지법문을 한번 듣기만 해도 한량없는 복을 받고 꼭 성불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것은 좀 딱딱해서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런 좋은 법회가 있어서 인연을 맺기 위해서 한 말씀 드립니다. 그러면 구경의 궁극은 어떠한 것이냐.

    답착비로정상행(踏着毘盧頂上行)하고, 높이 비로 정상을 밟고 간다.

    팔각마반공리주(八角磨盤空裏走)로다,
    여덟 모단 맷돌, 곡식을 가는 맷돌이 허공에 날아 달아나도다.
    포사석녀향로공하고, 베를 짜는데 북이 왔다 갔다 하는구나.

    여러분은 잘 모를 겁니다만, 옛날에는 여성들이 다 베를 짰어요.
    돌로 된 여자가 베를 짜는데 허공에 소리가 난다는 말입니다.

    해저니우야규빈이로다,
    바다 밑에서 진흙소가 밤중에 울부짖는 소리가 자꾸 들려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본지풍광의 차원에서 그대로 한 말입니다.
    이것을 한 번 듣고 여러분이 이제 공부하면, 한량없는 복을 받고 한량없는 지혜가 나오고 성불한다고 그랬습니다.
    한 번만 들으면 꼭 성불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