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최상의 방편이다.-청화스님
그렇게 마음도 평화스럽고 그리고 믿음 그것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다 상통이 됩니다. 남을 미워하고 의심쩍어 해 놓으면 그 때는 그냥 그 마음이 건너가서 나를 안 믿는단 말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불신의 시대라, 서로 믿지를 않는 것이 병입니다. 서로 믿지 않는 것은 자기 마음의 본성도 모르고 남의 마음의 본성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본성도 부처고 저 사람 마음의 본성도 부처다. 이렇게 안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가 안 믿을 수가 있습니까? 내가 너무 믿다가 저 사람이 나를 속이면 손해가 아닌가? 더러는 시행착오로 손해를 볼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영원적인 차원 해탈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설사 몇 번 속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손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귈 때 가장 좋은 방편이 무엇인가? 그것은 저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저 사람도 나와 똑같이 부처님이다. 이렇게 믿고서 우리가 최선을 다한단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 사람끼리 사귀는데 있어서 가장 우수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하신 방편이고 석가모니가 하신 방편입니다. 불경(佛經)에서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무량수(無量壽佛) 무량광(無量光佛)이다. 목숨이 영생불멸한 생명이고, 또는 부처님 지혜가 우주에 충만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할 수 있는 지혜다. 부처님은 생명의 본질인 동시에 우주 만유의 본질이고 그 가운데는 만 공덕이 다 들어 있다. 우리가 이렇게 듣고서 한 생각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할 때는 80만억 나유타겁(那由他劫)이란 오랜 무수한 세월동안 계행 지키고 법문도 하고 보시도 하는 바라밀 공덕과 비교할 때 믿는 그 마음이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량무변하다. 내 생명이나 일체 부처님의 생명이 영생불멸하고 만공덕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한번 딱 믿는 그것과 무량 세월 동안에 계행 지키고 보시하고 참선하고 염불하고 이런 공덕에 비해서 다시 비교할 수 없는 한도 끝도 없이 더 공덕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화경(法華經) 공덕품(功德品)에 있는 법문입니다. 법화경은 대승경(大乘經)아닙니까. 법화경 공덕품에 가서 방금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이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은 내 생명의 본질인 동시에 우주의 본체인데 그 가운데는 무량의 공덕이 다 들어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서 그 자리를 딱 믿으면 한번 믿는 그 마음이 몇 천 년 몇 만 년 동안에 보시하고 계행 지키고 참선하고 이런 공덕보다도 훨씬 더 수승하다는 그런 법문이 있습니다. 다른 공부하는 법을 무시하는 그런 법문이 아닙니다. 다만 앞서 말씀과 같이 부처님의 무량지혜(無量智慧) 무량공덕(無量功德)을 믿는 그것이참다운 신앙(信仰)입니다. 그 자리를 믿고 염불도 하고 주문도 외이고 참선도 하고 그렇게 해야 공부가 속빠른 것입니다. 내 마음의 본성이 그와 같이 일체 만공덕을 다 갖추고 있다. 지혜도 자비도 행복도 다 갖추고 있다. 이렇게 분명히 딱 믿고서 그 자리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갈앙심으로해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할 때에 그렇게 공부를 해야만 공부가 속빠른 것이고 또 피로하지도 않고 병도 생기지가 않습니다. v 우리가 공부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그런 경계가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더러는 부처님 같은 모양으로 나오고 또는 신장이 나오고 말입니다. 별스러운 경계가 다 있으나 부처님이라 하는 것은 내가 가고자 하는 근본 목적이 부처님하고 다른 것이 아니라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내 생명의 근본인 동시에 우주에 가득차 있는 모든 존재의 근본생명이고 그 자리는 만공덕을 다 갖추고 있는 그 자리다. 하나의 생명의 실상이다. 이렇게 분명이 믿어 버린다고 생각할 때는 다른 나뿐 경계가 공부할 때에 옆보이지를 못합니다. 우리 마음이 시원찮고 그래저래 묽으니까 경계가 이것저것 나오는 것이지 우리 마음이100% 가고자 하는 근본 도리 진여불성 도리에 마음을 딱 못 박고서 그 자리를 굳건히 믿는다고 생각할 때는 공부가 굉장히 속빠른 것입니다. 공부를 꼭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마음의 고향자리 어차피 그 자리에 가야 합니다. 떠나온 것도 역시 그 자리에서 떠나 왔습니다. 진여불성에서 우리가 떠나온 것이고 그러다가 몇 만생을 지옥으로 아귀로 우리가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돌아가는 것도 역시 근본자리인 진여 불성 자리입니다. 삼계유여객사(三界喩如客舍)라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나 또는 욕계나 색계나 무색계나 모두가 다 오랜 '나그네 길'입니다. 욕계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이 헤매어 왔는고. 여기 계시는 분들 과거에는 천상에도 계셨고 그랬으리라 믿습니다마는 그렇더라도 역시 지옥 아귀 축생을 다거쳤습니다. 거쳐 왔음으로 기분 사나웠을 때 남을 미워하는 것을 보십시오. 금방 그 사람을 때려죽이고 싶지요. 그것은 바로 지옥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한테는 지금 아귀 같은 욕심(慾心) 아수라 같은 진심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발동을 다 막아야 합니다. 진심이 사무치면 자기 부모도 죽이는 것입니다. 욕심을 내면 그 욕심 때문에 보십시오. 가정불화 단체불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말입니다. 그 하찮은 물질 욕심. 물질은 본래로 없습니다. 우리가 금생에 살기 위해서 몸을 타고 나왔으므로 최소한으로 먹고 최소한으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은 위험스러운 시대입니다. 국제화 시대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과도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 전쟁 또는 지식경쟁 또는 기술경쟁 각기 민족끼리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시일 내에 일본을 능가할 수가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물질로 해서는 지금 다른 선진국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정다운 믿음 정다운 가치관 이것은 우리 마음먹기에 따라서 그냥 당장에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어떤 나라나 자기들이 애쓰고 물질을 많이 생산하고 풍요를 자랑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네들도 종단에는 부처님 가르침 같은 우주의 도리를 따라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우주의 도리입니다. 우주가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의 궤도에 따라야 파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네들도 역시 몇 번 시행착오를 경험하다가 종당에는 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번뇌를 이기는 것도, 또는 국제간에 이기는 것도 모두가 다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다른 것으로 해서는 이길 길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이겼다 하더라도 별것도 아닙니다. 물질을 남보다 더 많이 가지면 그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시기를 하겠지요. 감투나 물질은 그것은 많이 가져 보아도 이것은 사실은 불화의 씨앗밖에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자본주의 사회를 보십시오. 부익부 빈익빈이라. 부자는 더욱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계금의 고랑을 메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은 혁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이버에서 옮겨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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