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출가와 수행-
고따마 싯닷타(Gotama Siddhattha, Sk. Gautama Siddhartha)는 온갖 호화로움과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도 비범한 재능을 발휘한 학문이나 무예도 결코 싯닷타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싯닷타는 부족함이 없는 왕궁의 생활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는 인간이나 세계와 같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에 관해 깊은 사색에 잠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 가운데서도 특히 그를 괴롭힌 것은 생(生) · 노(老) · 병(病) · 사(死)와 같은 삶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숫도다나(Suddhodana, 淨飯王)와 양모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apajapati Gotami, Sk. Mahaprajapati Gautama, 摩訶波闍波提瞿曇彌)는 이런 왕자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싯닷타가 훌륭하게 자라나 왕위를 잇고 석가족(釋迦族)의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싯닷타는 그런 세속의 일보다는 항상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혹시 왕자가 출가(出家)하여 수행자가 되지나 않을까 늘 염려하였습니다. 싯닷타를 서둘러 결혼시킨 것도 이러한 걱정과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젊은 날의 싯닷타는 자신이 처한 위치와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에 대해 고뇌하였던 것입니다. 여러 문헌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호사스런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인생의 문제에 대해 깊이 사색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의 고뇌는 주로 생·노·병·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사문출유(四門出遊)로서 정리되었던 것입니다. 초기경전인 <마하빠다나 숫따(Mahapadana sutta, 大本經)>에는 과거세(過去世)의 비바시불(毘婆尸佛)의 '사문유관(四門遊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붓다는 유원(遊園)으로 가기 위해서 곱게 꾸민 수레를 신두산(産) 말에 매고 가던 중,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진 채 지팡이를 손에 쥐고 부들부들 떠는 노인을 만남으로써 살아있는 모든 것이 늙는다면 태어나는 일 자체가 화(禍)라고 느꼈으며, 마찬가지로 질병과 죽음을 보고 인생의 덧없음을 알았고, 최후로 출가 수행자를 보고 자신도 집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이것이 후세에는 정형화(定型化)하여 사문출유(四門出遊)의 전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전설에 의하면 태자는 왕성(王城)의 네 개의 문으로부터 출유(出遊)하여 각각 노인·병자·죽은 사람, 그리고 수행자를 만났다는 것이며, 이것이 출가의 동기(動機)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붓다의 출가 동기로서 널리 전해지고 있는 '사문출유'의 전설은 후대의 불전문학(佛傳文學)인 <랄리따위스따라(Lalitavistara, 普曜經)>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 태자는 동쪽의 성문을 나와 노인을 만나고, 남쪽의 성문을 나와 병자를 만났으며, 서쪽 문을 나와 죽은 자를 만나 비애(悲哀)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북쪽 문을 나와 출가 수행자를 만나 그의 숭고한 모습에 감동하여 출가를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팔리어로 씌어진 <자따까(Jataka, 本生經)>의 주석서 서설(序說)에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설화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처음 세 차례의 출유(出遊)에서 노인과 병자와 죽은 사람을 만나 도중에서 되돌아섰던 태자는, 네 번째의 출유 때 사문을 만나고서 자기 생애의 목표를 분명히 깨달았으므로 마음 가볍게 그대로 동산에 가서 해질 녘까지 즐겁게 놀았습니다. 동산의 못에서 미역을 감고 향을 뿌린 몸에 새 옷을 입고 산뜻한 기분으로 돌아갈 채비를 차립니다. 바로 이때 성 안에서는 태자비가 사내아이를 낳았으므로 숫도다나왕은 기뻐하면서 급히 시종을 보내어 태자에게 알립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자는, "라훌라가 생겼구나!" 라고 외쳤습니다. 라훌라(Rahula)란 '장애(障碍)'라는 뜻입니다. 은애(恩愛)의 굴레가 늘면 출가 수행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로 인해서 그 아이는 라훌라(羅候羅)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날 태자의 귀로에는 시민들의 환영으로 떠들썩했다. 어느 길가에 왔을 때, 한 높은 누상(樓上)에서 무사 귀족의 딸 끼사 고따미(Kisa Gotami, 機舍喬答彌)가 태자의 행렬(行列)과 그 행렬 속의 태자의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런 아들을 가진 아버지는 행복하겠네, 저런 아들을 가진 어머니는 행복하겠네, 저런 사람을 남편으로 받드는 부인은 행복하겠네. 이 노랫소리가 태자의 마음을 끈 것은 그 노래 속의 '행복하겠네'(Nibbuta)란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태자가 늘 구해 마지않던 열반(涅槃)과 관련이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태자는 '드디어 출가할 시기가 온 것을 깨우쳐주었다'라고 생각하고 아주 기뻐하며, 그 답례로 자기 몸에 지니고 있던 값비싼 진주 목걸이를 벗어 그녀에게 던져주었습니다. 끼사 고따미는 '태자는 날 사랑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기뻐 어찌 할 줄을 몰랐습니다. 궁전에 돌아온 태자는 출가의 결심을 하고, 그 날밤 마부 찬나(Channa, Sk. Chandaka, 車匿)에게 분부하여 애마(愛馬) 깐타까(Kanthaka, 犍陟)를 채비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갓 태어난 아들에게 이별을 고하고자 하지만, 태자비의 팔에 안겨 있는 갓난아기를 만지면 태자비가 눈을 떠 출가의 기회를 잃어버릴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말없이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불전문학(佛傳文學)에 씌어진 사문출유(四門出遊)의 이야기는 사실 그대로를 묘사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들은 있었겠지만, 이것은 후대의 불전 작가들이 보다 드라마틱하게 윤색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고뇌로부터의 해탈'이라고 하는 붓다의 출가 목적을 확실히 드러내려고 한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싯닷타 태자가 왕궁의 호화로운 생활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아들 라훌라(Rahula, 羅候羅)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제 출가를 결행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밤 싯닷타는 남몰래 왕궁을 빠져 나와 출가 구도(求道)의 길을 나섰습니다. 후대 불전에 의하면 태자는 어느 날 밤 몰래 마부 찬나(Channa)를 앞세워 애마 깐타까(Kanthaka)를 타고 까삘라밧투를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그때 나이는 29세였습니다. 싯닷타가 뒷날 진리를 깨달아 붓다가 된 다음, 그는 자신의 출가 동기를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가 없고, 더러움이 없는, 가장 안온한 행복의 삶(열반)을 얻기 위해서였다.<중아함경 권56, 라마경> 이 세상에 만약 늙고, 병들고, 죽는 이 세 가지가 없었다면 여래(如來, 붓다)는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잡아함경 권14, 346경> 위에서 살펴본 사문유관의 도식적인 묘사나 이같은 붓다 자신의 술회는 다같이 싯닷타의 절실한 출가 동기가 무엇이었던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고, 그 필연적인 인생의 괴로움을 슬퍼하였으며, 불완전한 인간 세상의 모습을 괴로워했습니다. 그 끝에 마침내 그러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왕궁을 버리고 출가를 단행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의 길을 찾아 세속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던져 버린, 참으로 '위대한 버림'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2. 구도의 편력 이렇게 해서 사문(沙門), 즉 출가 구도자가 된 싯닷타에게 이제 중요한 것은 자신을 이끌어 줄 스승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후대의 문헌에 속하는 테리가타(Theragatha, 長老尼偈)의 주석서에서는 그의 편력(遍歷)에 대해서 처음 박가와(Bhaggava)의 은신처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는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하늘에 태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고행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싯닷타는 우선 이들 고행자들의 목적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일 또한 생과 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떠난 싯닷타는 다시 브라흐만(Brahman, 梵天)과 해와 달과 불을 섬기는 사람들을 만난다. 여기서도 그는 역시 자신이 닦을 만한 수행이 아니라고 판단하게 된다. 이 외에도 많은 수행자들을 찾아 다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랄리따위스따라(Lalitavistara)>에 의하면, 그는 출가하여 바라문 여성 싸끼(Saki)와 바라문 여성 빠드마(Padma)의 은신처에 초대를 받았으며, 바라문 라이와따(Raivata) 성인과 뜨리만디까(Trimandika)의 아들 라자까(Rajaka)로부터 환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때는 싯닷타가 베살리에 도착하여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를 만나기 전이었습니다. 이렇게 싯닷타의 구도 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까삘라왓투(Kapilavatthu)에서 동남쪽으로 약 1,000리 거리에 위치한 베살리(Vesali, Sk. Vaisali, 毘舍離城)로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 Sk. Arada Kalama, 阿羅羅伽羅摩)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배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관(觀)하는 선정(禪定)' 즉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 당시 큰 나라였던 마가다(Magadha)국의 수도 라자가하(Rajagaha, Sk. Rajagrha, 王舍城)에 도착했습니다. 신흥의 도시 라자가하는 당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답게 수많은 사문들과 사상가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싯닷타는 그곳에서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 Sk. Udaraka Ramaputra, 優陀羅羅摩子)라는 스승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웃다까 라마뿟다는 '상념(想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관(觀)하는 선정(禪定)' 즉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이상으로 삼고 있었는데, 싯닷타는 여기에도 만족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상비비상처정'은 '무소유처정'보다 더욱 미묘한 선정의 경지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미묘한 선정에 들면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지고 마치 마음이 '부동(不動)의 진리'와 합체(合體)된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선정에서 깨어나면 다시 일상의 동요하는 마음으로 되돌아옵니다. 따라서 선정에 들어 마음이 고요해졌다고 해서 진리를 체득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선정은 심리적인 마음의 단련이지만, 진리는 논리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진리는 지혜에 의해 얻어집니다. 그래서 싯닷타는 그들이 택하고 있는 수정주의(修正主義)의 방법으로는 생사의 고통에서 해탈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곁을 떠났다고 합니다. 베살리에서 헤어진 알라라 깔라마와 함께 웃다까 라마뿟따는 당시 가장 명망높은 수행자들이었습니다. 선정(禪定), 즉 정신통일에 의해서 정신적 작용이 완전히 정지되어 고요한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이들의 수행 목적이었습니다. 선정(禪定)주의자 또는 수정(修定)주의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지도 아래, 싯닷타는 그들이 해탈의 경지라고 인정하는 최고 단계에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모든 괴로움이 없는 완전한 경지는 아니었습니다. 정신통일이란 끊임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경지이며, 정신적 작용의 완전한 정지 또한 결국 죽음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수행의 목적과 방법을 혼동한 채 오로지 수행을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같은 모순을 알게 된 싯닷타는 더 이상 수정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답습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스승으로 삼아왔던 웃다까 라마뿟따와도 작별하였습니다. 싯닷타는 전통적인 수행자들로부터는 더 이상 기대할 바가 없음을 깨닫고, 다시 라자가하에서 남쪽으로 80㎞ 가량 떨어진 우루웰라(Uruvela, Sk. Uruvilra, 優樓頻螺)의 세나(Sena, 斯那) 마을에 있는 네란자라(Neranjara, Sk. Nairanjana, 尼連禪河) 강 근처의 숲속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고행림(苦行林)으로 불리던 이 곳은 현재의 보드가야(Bodhgaya) 동쪽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그는 새로운 결심으로 맹렬한 고행을 시작했습니다. 싯닷타가 구도자의 길에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라자가하의 성 밖의 판다바 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빔비사라(Bimbisara, 頻婆娑羅)왕은 성 안에서 탁발하고 있는 싯닷타를 발견하고, 그 단정한 태도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신하들을 시켜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을 알아낸 다음, 스스로 수레를 갖춰 판다바산으로 가서 동굴에 거주하던 싯닷타를 방문하고, 코끼리 무리를 선두로 하는 군대와 재력을 제공하여 원조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빔비사라 왕은 싯닷타의 출가 수도를 중지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싯닷타는 자신이 유서 깊은 샤카족 출신으로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출가한 것이 아니라, 욕망을 벗어나 열심히 수도하기 위하여 출가한 것이라 하여 이 원조의 약속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때 빔비사라 왕은 당신의 뜻을 이룬 다음 자신에게 그 진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이룬 뒤 붓다는 빔비사라 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라자가하를 방문하여 그에게 법을 설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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