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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관음예문(觀音禮文)-관행(觀行)

by 회심사 2017. 5. 14.

관음예문(觀音禮文) : 관음예문(觀音禮文)은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하여 과거에 지은 업을 참회하고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으로 앞으로의 행복을 기약하는 예참문이다.

<관음예문>에는 관세음보살과 버들가지의 관계를 설명하는 귀절이 있다.
"원하옵니다. 모든 법계의 사생과 육도 중생들이 수많은 겁 동안 거듭나면서 살생한 죄업을 없애주소서. 또 저희들이 지금 참회하오며 머리를 땅에 대고 예배하오니, 모든 죄의 업장이 다 없어지고 세세생생에 항상 보살도를 행하게 하여 지니이다.

황금빛의 몸으로 연꽃 속에 앉으사 오묘한 향기 짙게 풍기시어, 인간세계의 더러운 것을 없애 주시오며 보배로운 손으로 버드나무 가지를 잡으사 감로수(甘露水)를 뿌리시어, 귀신들 세계의 뜨거운 열을 식혀 주시는 대비 대원하시며 대성 대자하신 거룩한 백의의 관자재보살 마하살이여, 오직 원하옵나니 자비로써 오늘의 이 도량에 강림하사 이 공양 받아 주시옵소서."

여기서 관세음보살의 버드나무가지는 감로수를 뿌리기 위한 도구이며 귀신세계의 뜨거운 열을 식혀주는 기구로 표현되어 있다.

<관음예문>의 또 다른 귀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벽옥(碧玉)은 감돌아 청라(靑螺)의 무늬를 이루고 자금(紫金)의 손바닥 연꽃무늬도 분명하다.
여덟 가지 공덕수(功德水)로 혼몽한 정신 씻어 주며, "칠보(七寶)의 버드나무 가지로 뜨거운 번뇌 없애 주네." 그러므로 저희는 한 마음으로 귀명하오며 정례하나이다.

이와 같이 버드나무 가지는 단순한 나뭇가지가 아니라 칠보의 나뭇가지이며 뜨거운 번뇌를 식혀 주는 가지이다.

<관음예문>에는 지장보살이 함께 예배를 받는 장면이 있다.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은 여러 곳에서 자리를 함께 한다.
<지장경(地藏經)>에는 관세음보살이 여러 대중 앞에서 지방보살의 위대한 힘과 과거의 업을 찬양하는 장면이 있다.

<관음예문>에 지장보살이 자리를 함께 하는 것도 지장과 관음의 대자대비 대원(大願)이 걸맞기 때문이다. 지극한 정성 다하여, 귀명하오며 예배하나이다.

고상한 가사 수하시어 사문(沙門)의 모습 나타내시고, 석장(錫杖)을 짚으시고 염주를 드셨으며, 얼굴은 가을의 보름달 같으시고 눈과 같이 흰 마노(瑪瑙)의 이는 가지런하시며, 눈썹은 드리운 버드나무 가지와 같이 아름다우시며, 자비하신 마음은 삼도에 떨어진 중생을 길이 구제하시고, 크고 넓으신 원력으로 항상 육도의 중생 세계에 머물러 교화하시되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기까지는 결코 깨달음을 증득하지 않으리가 하시옵고, 지옥을 다 없애지 않고서는 결코 성불(成佛)하지 않으리라 하신 대비대원하시며 대성다자하신 본존(本尊) 지장보살 마하살이시여, 오직 원하옵나니 자비로써 오늘의 이 도량에 강림하사 이 공양 받아 주시옵소서.
관자재(觀自在) : 아미타 3존의 하나인 보살의 이름. 모든 법을 보는 데 자재로운 보살, 또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데에 자유 자재로운 보살이라는 뜻.
관자재보살 (觀自在菩薩) : 관세음보살의 다른 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일체의 중생계를 관찰하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구제해 주는 것이 자유자재한 보살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관세음보살 참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관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관정(灌頂) : 머리 위에 물을 뿌려 줌으로써 어떤 자격을 구비하게 되는 의식. 옛날 인도의 국왕이 왕위에 오를 때, 4대해의 바닷물을 그 정수리에 뿌려 축하해 주는 의식에서 유래되었다. 후대에는 종교 교단에서 계를 받거나 일정한 지위에 오르는 수행자의 정수리에 향수(香水)를 끼얹는 의식으로 변형되었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의 탄생 장면에 관정 의식을 상징하는 부조 작품이 전해짐으로써 불교의 성립 초기부터 관정 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수많은 불교 예술 작품에서, 마야(m y ) 왕비가 석가모니를 낳는 장면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은 두 천녀가 각각 찬물과 더운물을 아이의 머리 위에 붓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천녀가 등장하는 대신에 물을 뿜어 내고 있는 용왕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후대에는 특히 밀교 교단에서 스승이 제자 또는 수계를 받는 이에게 관정을 행하는 것이 중요한 의식으로 자리 잡기도 하였다.
관정위(灌頂位) : 대승 보살의 10주(住) 중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인 제10주인 등각(等覺) 보살의 지위. 제10주에 오른 보살은 관정을 받을 수 있으며, 부처의 경지에 오른 보살이라는 뜻에서 관정 보살이라고 부른다.
관찰득실(觀察得失) : 어떤 주장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세 가지 관점에서 관찰하고 그리고 나서 자신의 주장을 밝혀야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가 관찰득실인데, 이것은 자신의 주장을 밝힐 경우 여러 사람에게 해로운 것인가 이로운 것인가, 죄를 짓는 것은 아닌가, 마음에 고통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서로 싸우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소송을 걸어 거짓말로 서로를 욕되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는가, 여러 가지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모든 사람이나 제천(諸天)에게 이익을 주지 않고 안락(安樂)하게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를 관찰하고 이로울 것으로 판단이 날 경우에만 주장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 밖에 관찰해야 할 나머지 두 가지로는 관찰시중(觀察時衆)·관찰선교불선교(觀察善巧不善巧) 가 있습니다.
관찰선교불선교(觀察善巧不善巧) : 어떤 주장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밝히기에 앞서서 신중히 관찰해야 할 세 가지 일 중의 하나입니다. 곧 자기 자신의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논의를 펼쳐나감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충분히 설득할 만한 능력이 있는가 등을 관찰하고 확신이 설 경우에만 주장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 밖에 관찰해야 하는 것으로는 관찰득실(觀察得失)·관찰시중(觀察時衆) 등이 있습니다.
관찰시중(觀察時衆) : 어떤 주장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밝히기에 앞서서 신중히 관찰해야 하는 세 가지 일 중의 하나입니다. 곧 그 주장을 밝히려고 하는 집회의 구성원이 공정한가 불공정한가를 관찰한 다음에 공정하다는 판단이 내릴 때 비로소 주장을 밝히는 것입니다. 관찰해야 할 세 가지 일 중 나머지는 관찰득실(觀察得失)·관찰선교불선교(觀察善巧不善巧) 등입니다.
관해(觀解) : 관찰하여 이해하는 것입니다. 곧 진리를 깊이 관찰하여 실상을 깨닫는 것입니다
관행(觀行) : 주객의 모든 것을 법에 따라 관찰하여 실상에 이르는 수행법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신·수·심·법(身受心法)의 네 가지를 관찰하는 4념처관(四念處觀)을 비롯하여 모든 대상을 무상으로 관하는 무상관 등 다양한 관행이 있습니다.

관(觀)은 마음의 눈으로 관찰하여 본다는 뜻이므로 이치를 생각하고 안으로 비추어 보는 것이고, 행(行)은 실지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교학(敎學)을 공부하는 이는 눈과 입으로만 건성으로 경전을 읽지 말고 마음으로 돌이켜 비추어 보는 [廻光返照]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음에 돌이켜 살피지 않으면 경 보는 일이 아무런 이익도 없다 [心不返照 看經無益] " 고 청매선사사(靑梅禪師)도 그의 < 십무익송(十無益頌)> 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