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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불법을만나고/卍-불교자료실

47. 석가족 학살 사건

by 회심사 2019. 2. 22.


-47. 석가족 학살 사건-
    -비타투바의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꼬살라국 파세나디왕의 아들 비타투바와 관련하여 47번째 구절을 설하셨다. 꼬살라국의 파세나디왕은 석가족과 혼인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사신을 까삘라밧투 가비라성에 보내 한 석가족 공주에게 청혼서를 건네었다. 파세나디왕을 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석가족의 공주는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답하였다. 그러나 석가족 사람들은 공주 대신에 마하나마왕과 여자 노예 사이에 태어난 매우 아름다운 소녀를 꼬살라국으로 보냈다. 파세나디왕은 그 소녀를 그의 왕비중의 하나로 삼았고, 그래서 아들을 낳았다. 이아들의 이름을 비타투바라고 지었다. 왕자가 16살이 되었을 때, 마하나마왕과 석가족 공주들을 만나려고 방문했다. 거기서 그는 후한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비타투바보다 어린 모든 석가족의 공주들은 마을 밖에 나가있게 해서 그들은 비타투바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게 하였다. 까삘라밧투에서 며칠간 지낸 뒤에 비타투바와 그의 일행은 고향으로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바로 한 노예 소녀가 비타투바가 앉았던 곳을 우유로 씻어내면서 욕을 했다. "여기가 노예 계집의 아들놈이 앉았던 자리란다. " 바로 그때 비타투바 일행 중의 한명이 그곳에 두고 온 것을 가지러 돌아왔는데, 노예소녀가 한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노예소녀는 그에게 비타투바의 어머니 베사하카띠야는 마하나마왕이 소유한 노예계집의 딸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비타투바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분노로 매우 포악해져서 언젠가 석가족의 씨족을 모조리 쓸어내고 말겠다고 선언했다. 비타투바가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석가족의 나라로 진군하여 마하나마왕과 함께 있던 몇 사람과 다른 소수의 사람을 빼고는 석가족을 모조리 학살해 버렸다. 비타투바와 그의 군대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아찌라바띠 강가의 모래톱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바로 그날 밤에 상류지역에 많은 비가 내렸기 때문에 강물이 불고 세차게 흘러 내려서 비타투바와 그의 군대는 바다로 휩쓸러 갔다. 이 두개의 비극적인 사건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그의 친척, 즉 석가족의 공주가 그의 많은 전생 중의 하나에서 강에 독을 풀어 물고기를 죽였었고, 그 일의 과보로써 석가족의 공주는 모두 함께 죽게 되었다. 그리고 비타투바와 그의 군대에 대한 사고에 대해 언급하면서 부처님께서는 거대한 홍수가 잠들어 있는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 모두를 휩쓸어 가버리는 것처럼, 또한 그렇게 죽음이 감각적인 쾌락을 갈망하는 모든 중생을 잡아가버린다. 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시를 읊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꽃을 고르듯 마음이 감각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사람은 죽음에 잡혀간다. 마치 거대한 홍수가 잠들어 있는 마을을 휩쓸어 버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