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의 바른 이해-2. 五十魔를 말하다. 6) 識陰의 魔- 아난아, 삼매를 닦고 익혀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운차게 움직이는 어리석음(行陰)을 벗겨낸 저 맑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세간에 참다운 모습(性)이란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性)인 반야(明)의 바탕(淸)위에 있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한 자리에 모여 사는 여러 모습의 중생(衆生 역주 : 七聚)들의 ‘진아(眞我)’의 인연의 사슬들이 문득 떨어져 깨어지게 되면, 업에 대한 되갚음으로 이어져 가는 목숨에 전혀 전달됨이 없이 끊어지게 되므로 열반천(涅槃天)에 다다르게 되어 반야로 깨달음을 이루게 되나니, 마치 닭이 울게 되어서 동쪽 하늘을 바라보게 되어 새벽이 다가온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육근 속에 머물던 온갖 생각이 사라지게 되어(虛)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지면, 두 번 다시는 번뇌에 시달리지 아니하듯이
안팎으로 아주 맑고 깨끗한 반야(明)와 빛이 하나가 되어 모르는 바가 전혀 없게 되어서, 온 세상에 있는 열 두 종류의 중생들이 목숨을 이어가는 참다운 이유를 깨닫게 되어 목숨이 만들어지는 본바탕을 멈추게 되면 모든 중생들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것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헤아려보니 온 세상도 또한 그런 줄을 알게 되었고 반야의 빛이 기쁨과 즐거움으로(不沈 역주 : 歡喜心에 의해 涅槃을 證得) 드러나게 되어 어두움(역주 : 어리석음)이 사라지게 되나니, 이를 일러 ‘반야의 빛 속에 어리석음이라는 어둠이 사라져가고 있는(識陰) 세계’라 부르느니라.
만일 칠취(七趣 역주 : 趣는 무의식이던 의식이던 간에 마음에 들어 하므로 저지르게 되고 그 인연으로 태어나는 곳)가 태어나는 본바탕이 단 한 가지 까닭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육근의 문(六門)이 사라지게 되어 육근이 따로 작용하던 것이 단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어(역주 : 눈으로 보지 않아도 볼 수 있고, 귀로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으며, 코로 냄새 맡지 않아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보고 듣는 것이 진공(眞空)에 거의 가까이 다다르게 되어 맑고 깨끗함을 서로 어우르게 되어서) 온 세상뿐만 아니라 몸 마음 까지도 마치 개가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짖듯이 안팎으로 모르는 것이 사라지게 되나니, 이를 일러 반야의 빛이 드러나게 되어 어리석음이 사라짐(識陰盡)이라 부르느니라.
이러한 사람은 스스로 어리석음에 의해 목숨에 매달리게 됨(命濁)으로 부터 벗어나게 되며, 모든 중생들의 목숨이 그물처럼 얽히고설킨 모습이 참다운 모습이 아님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살피게 되어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목숨이라는 본바탕을 이루게 된 것을 알게 되느니라.
아난아, 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 식음(識陰)의 본바탕에 돌아오게 되면 나고 사라짐이 반드시 사라지게 됨을 알아서 마치고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 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스스로는 따로 따로 쓰이던 자신의 몸속 육근이 하나가 되어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중생들과도 통하여 알 수 있으며, 그 깨달음으로 열반(惚)과도 통하여 알게 되어 그 자리에 머물러 본바탕과 하나로 이루게 됨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열반에 들어가는 것만이 변함없는 참됨이라고 여기게 되어 더할 나위 없는 해탈을 이루었다는 생각을 내게 되면, 이 사람은 모든 중생의 목숨 만들어 지는 곳을 알게 된 것을 목숨의 본바탕을 알게 된 것으로 여기게 되어 사비가라(역주 : 바라문)가 본바탕으로 돌아가는 곳을 명제(冥諦 역주: 三昧의 힘이 약해서 더 이상 볼 수 없기에 아득하다 표현함.)라 하였듯이 깨달음을 이루었다 생각하고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 역주 : 意識에 의해 아는 것을 知, 眼識에 의해 보는 것을 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첫 번째, 마음속에 깨달은 바가 있다고 내세우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목숨이 만들어지는 곳인 본바탕에 이르러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여기게 되면(果), 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 역주 : 부처님의 마지막 涅槃, 열세 번째 識)을 등지게 되고 외도(外道)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아난아, 또 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 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아서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 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만일에 열반에 들어가서 모든 허공(虛空)과 그 안에 사는 열두 가지의 중생들이 자신의 몸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게 되어서 모든 것이 내 몸에서 한결같이 흘러나온 것이라고 여기게 되며 더할 나위 없는 해탈을 이루었다는 생각을 내게 되어, 이 사람은 스스로 짓지 않은 것을 스스로 지었다고 하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면 마혜수라(摩醯首羅 역주 : 하느님, 창조주)가 무변신(無邊身 역주: 直譯하지 마시고, 全知全能하다고 여겨 끊임없이 意識을 부풀려 無에 대해서 征服意志를 가짐, 지금 이 순간에도 宇宙와 우리 마음은 그래서 膨脹하고 있음)을 이루었다고 여기게 되어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두 번째, 스스로의 마음으로 모든 만물을 만들었다고 내세우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스스로 모든 만물을 만들었다고 여기게 되면(果), 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 역주 : 부처님의 마지막 涅槃)을 등지게 되고 외도(外道)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 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아서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 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만일에 열반에 들어가서 의지하고 머무르며 몸 마음이 바로 이곳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온 세상도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스스로 곰곰이 헤아려 보게 되고 만들어 지는 모든 것이 이곳으로부터 생겨나니 나고 진실로 사라짐 없는 변하지 않는 몸을 이루었다고 그릇되게 이해하게 되어 나고 사라짐 속에 언제나 변함없이 머물러 있다고 잘못 헤아리게 되어서 변함없이 머물러 있는 것과 나고 사라지는 것이 따로 있다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게 되어 깊은 어리석음에 빠져 있으면서 빼어난 해탈을 이루었다고 여기게 되면 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을 변하는 것이라고 하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자재천(大自在天)이 그러하듯이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세 번째, 열반의 자리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고 여기는 마음을 내세우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몸 마음 뿐 아니라 온 세상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허망하게 헤아리게 되면, 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을 등지게 되고 모든 것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여기게 되는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 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아서 만일 앎과 앎의 대상이 본래 하나라고 하게 되어서 온 세상에 풀과 나무도 헤아릴 줄 안다는 견해를 세워서 모두 다 마음이 있으므로 사람과 다를 바 없다하며, 풀과 나무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죽어서 온 세상의 풀과 나무로 뒤바뀐다고 하며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알아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 이러한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안다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파타와 산니라는 두 외도(外道)가 ‘모든 만물이 깨닫는다.’라고 말한 것에 집착하게 되어서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菩提)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네 번째, ‘모든 것을 다 안다.’라고 헤아리게 되는 마음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로 그릇 되이 열반을 이루었다고 하면, 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을 등지게 되고 모든 것을 자기가 다 안다고 여기게 되는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 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만일 참되고 하나로 통하여 아무 구별이 없어지게 되면 육근 중에 어느 것을 쓰더라도 순종하여 거르지 아니하기에 문득 그 하나로부터 모양과 성질이 바뀌게 되어 모든 만물이 나오게 되나니, 불에서 빛을 구하고 물의 맑고 깨끗함을 좋아하며, 바람의 걸림 없는 흐름을 사랑하게 되고, 지·수·화·풍의 사대가 이루는 것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살피게 되어 이 사대(四大)가 뭉치어서 이루어 놓은 각각의 일들을 떠받들게 되어 본바탕에서 비롯되어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언제나 변함이 없이 머물게 된다는 그릇된 생각을 내게 되면, 이 사람은 만들어지는 것과 만들어 지지 않는 것이라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가섭형제와 바라문이 몸 마음으로 부지런히 불과 물을 떠받들면서 나고 죽는 윤회로부터 벗어나기를 구하므로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다섯 번째,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마음으로 물건을 떠받들어 망령되이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어 집착하여 헤아리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허무맹랑한 것을 구하여 똥을 얻는 것과 같아서 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을 등지게 되고 사대(四大)를 떠받들게 되면 성질과 모양이 바뀌게 되어서 열반을 이룰 수 있다고 여기게 되는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 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 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역주 : 天上天下唯我獨尊,덩그러니)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만일 반야와 하나가 되어 그 반야로 모든 것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하다고 헤아리게 되면 모든 바뀌는 것들은 그 쉼 없이 바뀌는 것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어 영원히 사라지는 것에 의지하여야 한다고 하고 돌아가 머물러 의지할 곳이 있다고 여기어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 이러한 사람은 돌아갈 곳이 없음을 돌아갈 곳이라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무상천 속에 있는 모든 수냐타(舜若多 역주 : 住空神, 空性)들처럼 공(空)을 바라게 되어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여섯 번째, ‘하나가 된 마음을 잘못 헤아려 허공(虛空)과 하나 됨을 무심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스스로 공(空)을 이루었다고 망령되이 여기게 되면(果) 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을 등지게 되고 단멸(斷滅 역주: 영원히 사라지는 것에 의지하여야 한다고 함)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 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 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만일 열반의 자리에서 그 몸이 언제나 머물러있게 되어 마음이 열반의 자리와 함께 하게 되면 영원히 죽지 않게 된다고 헤아려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 이 사람은 탐내지 아니하여야 할 것을 탐내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아사타(阿斯陀)선인(역주 : 부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관상을 본 仙人)과 그 무리들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게 되어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일곱 번째, ‘오래 사는 것을 으뜸이라 여기어 어리석게 고집을 부리어 매달리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오래 사는 것에만 매달리어 부질없이 헛된 힘만 쓰게 되면, 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을 등지게 되고 망연(妄延 역주: 허무맹랑하니 목숨을 늘리는 것이 涅槃이라 여김)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 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 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마음(命 역주 : 이 經典에서는 智慧도 여러 가지 漢字를 사용하였거니와 마음도 다양한 表現을 함, 주인공인 얼의 다른 이름)이 온 누리와 하나로 이루어 진 것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살펴보게 되어 허망한 모든 것(塵勞)은 다 물리치게 되었으나 아직 마음(命, 얼)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은 물리치지 못하였으니 문득 이 즈음에 칠보를 바꾸어서 연꽃으로 된 궁전을 크게 만들고 그 곳에 앉아 많은 보물과 궁녀들을 모아놓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마음속에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 이 사람은 전혀 참됨이 없는 것을 참되다고 여기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타지(吒枳 역주: 天魔)와 가라(迦羅 역주 : 天魔), 그들의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菩提)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여덟 번째, ‘삿된 생각을 비롯하여 허망한 짓을 하게 됨’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마음(命)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을 내어 허망한 생각을 내게 되어, 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을 등지게 되고 천마(天魔)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 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 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마음이(命 역주 : 아뢰야식의 완전한 純粹意識) 반야(明)와 하나가 되었으나 그 마음(精 역주 : 완전한 하나를 이루지 못하였기에 아뢰야식속의 헤아리게 되는 마음)속에 아직 거칠음이 남아있어 참된 모습과 하나 되기는 하였으되, 마음(精)속에 비롯함에 의하여 갚게 된다는 생각이 남아있어 오직 자신의 앞에 있는 대상과 서로 통하기만을 바랄 뿐 맑고 깨끗한 참다운 도리는 등지게 되나니,
이른바 모든 괴로움(苦)은 존재의 움직임(行陰 역주 : 諸法無我를 깨달아 사라지게 됨)에서 나오는 줄을 알아 기꺼이 멈추어 버리고, 열반만을 얻기 위하여 참다운 도리를 닦고 익히나니(역주 : 부처님께서 小乘의 四聖諦를 닦아 涅槃에 들고 衆生을 救濟하려 하지 아니하는 것을 나무라시는 말씀임) 열반을 얻고 난 뒤에는 그 곳에 머물러 편히 쉴 뿐이니, 다시 더욱더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 이 사람은 정성성문(定性聲聞 역주 : 小乘의 마지막 果인 阿羅漢果를 반드시 이룰 수 있는 無漏의 種子를 갖추고 있는 사람)에 떨어지게 되어 증상만(增上慢 역주 :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기는 버릇)을 내는 모든 무문비구(無聞比丘 역주: ‘무문’이라는 비구가 ‘내가 부처가 되었다.’ 라고 망령된 말을 하여 無間地獄에 떨어짐.)같은 무리들과 어울려 그들의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菩提)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아홉 번째, ‘마음이 참다움과 하나가 되었지만 그 마음이 오직 열반만을 바라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오직 열반만을 얻기를 바라여 그것을 구하고는 멈추어 쉬게 되면, 열반무위성(涅槃無爲)을 등지게 되고 전공(纏空 역주 : 참다운 공과 하나가 되어서 만족하고 이것마저도 벗어나려는 생각을 내지 않음)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 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 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만일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져서 반야와 하나를 이룸으로 모든 것이 막힘이 없이 하나로 통하게 되거니와,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헤아려보게 되어 마음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의 빛이 뿜어져 나와 본바탕과 하나를 이루게 되어 이것을 다함없는 열반(無餘涅槃 역주 : 아뢰야식이 완전한 純粹意識으로 바뀌는 涅槃과 부처님의 마지막 涅槃의 차이를 지금 設하고 계심)이라고 뜻을 세우게 되어 더욱더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 이 사람은 정성벽지불(定性辟支佛 역주 : 緣覺乘의 마지막 果인 阿羅漢果를 반드시 이룰 수 있는 無漏의 種子를 갖추고 있는 사람)에 떨어지게 되어, 마음을 회향(回向 역주 : 스스로가 쌓은 공덕이나 수행의 힘을 사람들이나 살아있는 생명에게 되갚음)하지 아니하고, 모든 연각(緣覺)과 독각(獨覺)들과 어울려 그들의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열 번째, ‘깨달아 마음이 열반의 자리에 머무르게 됨’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맑고 깨끗함을 끝내 지키어 반야(明)를 얻어 열반에는 이르렀으나 회향하지 못하여, 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을 등지게 되고 각원명불화원(覺圓明不化圓 역주 : 반야의 빛으로 깨닫게 되어 涅槃은 證得하였으나 그 곳에 머물러 衆生들에게 回向하지 아니하고 홀로 즐김)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아난아, 이러한 열 가지의 참선(禪那)을 닦아 익히는 동안에 미쳐서 깨달았다고 하게 되거나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는데 크게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것은 모두 반야의 빛이 드러나게 되어 어리석음이 사라짐(識陰)으로 스스로가 머물러있는 자리가 진실한 열반이라고 여기는 마음 씀씀이가 서로 어울림으로써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되나니, 중생들이 어리석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어 스스로 어리석은 줄을 헤아리지 못하여 이렇게 열반이 눈앞에 나타나게 될 즈음에 누구나가 열반을 애타게 사랑하게 되어, 먼저 오래도록 익혔던 버릇으로 그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어 스스로 그 곳이 진실한 열반(無餘涅槃)인 것으로만 알고 머물러 쉬게 되어서, 마침내는 그 곳이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자리로 여기게 되어 스스로 ‘첫째가는 빼어난 보리를 깨달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라고 말하게 되면 커다란 망령된 말을 지껄이게 된 것이니, 외도(外道)나 삿된 마구니가 되어서 닦고 익혀서 이루게 된 결실이 다 하게 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되나니,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아니하기에 참된 도리를 결코 이룰 수 없게 되느니라.
너희들은 마음을 굳게 먹고 여래의 올바른 도리를 지키어, 앞으로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말법의 세상에 이 법문(法門 역주 : 참된 道理와 하나가 되는 오직 한 가지 바른 길)을 널리 알리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이 올바른 도리를 깨달아 마치게 하고 스스로의 마음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심마(心魔)로 하여금 움이 터서 스스로 삿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며, 그들의 몸 마음으로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맛보아 편안하게 되어서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힘써 구하려들며 삿된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야 하며, 처음부터 바른 도리를 이루게 되어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여야 하느니라.
이러한 법문(法門)은 그 모래알만큼 많은 겁(劫) 중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여래(如來)께서도 이것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이루어 첫째가는 빼어난 도리를 얻게 되었나니, 만일 식음(識陰)을 다하고 나면 바로 내 앞에 모든 육근(六根)이 하나로 어울려 뜻대로 움직이게 되어서 서로 어울려 진실함과 하나가 되면 그 마음이 스스로 보살마하살의 결코 무너지지 않는 삼매인 금강유정(金剛喩定)에 들게 되어 건혜지(乾慧地 역주 : 菩薩十地, 佛地의 初地)에 오르고 맑고 깨끗한 그 마음(精心)이 반야인 빛과 완전히 하나를 이루어 그 속에서 모습과 성질이 완전하게 바뀌게 되나니, 마치 맑고 깨끗한 유리와 같게 되어 안에 보배로 된 달을 머금은 것이 훤히 비추이게 될 뿐만 아니라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사가행(十信, 十住, 十行, 十迴向, 四加行)을 하던 마음조차도 완전히 벗어던지게 되어 보살마하살들이 닦고 익히어 머무르게 된 곳인 무너지지 않는 자리(金剛)인 십지(十地)에 올라 깨달음과 완전한 한 몸을 이루게 되고, 그 깨달음이 반야인 빛과 하나가 되며, 여래께서 머물러 계신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꾸며진 보배바다에 들어가게 되어서 보리가 부처님나라와 하나를 이루어, 이루어졌다는 그 마음조차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느니라.
이것은 과거의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께서 깊고 고요한 마음집중(奢摩他)속에서 곰곰이 따져 살펴보는(위빠사나) 중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와 하나를 이룸(覺明)으로 하나하나 미세한 부분까지 파고 들어가 마구니가 저지르는 일인 줄 알게 되어 물리치게 되었느니라.
마구니들이 저지르는 짓이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되어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삿된 의견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식음(識陰)의 마구니가 사라지게 되어, 천마(天魔)는 부수어지고, 대력귀신은 넋이 빠져 죽게 되고, 도깨비와 귀신들은 두 번 다시는 태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며, 곧바로 보리에 다다를 때까지 공덕이 모자라거나 복력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고, 대열반(大涅槃 역주 : 無餘涅槃- 涅槃은 八識인 아뢰야식이 맑고 깨끗함으로 하나를 이루게 되는 것이고, 無餘涅槃은 열세 번째 意識임, 지금의 禪門에는 十牛圖까지 밖에 없음)어리석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니라.
만일 말법 세상에 어리석고 둔한 중생들이 아직 참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說法)은 알지 못하지만 삼매를 닦아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삿된 무리와 하나가 될까 네가 두렵거든 한마음으로 권하여 나의 불정다라니(佛頂多羅尼)를 지니어 믿고 따르게 하여라.
만일 스스로 외우지 못하거든 베끼어서 참선하는 곳이나 몸에 차거나 지니도록 하면 여러 마구니가 저지르는 모든 짓이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나니, 너는 온 누리에 계신 모든 여래를 마땅히 공경해야 할 것이며, 깨달음의 끝까지 닦아 익히어 나아갈 때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베풀고 본보기가 되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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