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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사상-십바라밀다(十波羅密多)

by 회심사 2019. 7. 17.


유식 사상-십바라밀다(十波羅密多)-

      유식사상에서는 지(止)와 관(觀)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지란 윤리적인 규범이며, 지식의 축척을 통한 지혜의 완성이다.
      즉, 지혜가 관이며 지(止)라는 것은 윤리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이것은 십바라밀다로 설명이 된다.
      육바라밀에서 4가지가 덧붙여진 것이다.

      ① 보시는 알고자 하는 이에게 아는 만큼 진리를 베품〔法施〕, 재물을 베푸는 보시〔財施〕, 상대편의 두려움을 없게 하는 보시〔無畏施〕로 설명된다.

      ② 계는 착하지 않은 마음을 버리는 계〔轉捨不善戒〕, 착한 마음을 북돋우는 계〔轉生善戒〕, 우주 생명을 이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계〔轉生饒益有情戒〕로 세분되어 있다. 이것은 윤리적 삶을 의미하며 인간의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근거이기도 하다.

      ③ 인(忍)은 원한 있는 마음, 해치려는 마음을 견딤(耐怨害忍)과 자신에게 당하는 모든 고통을 능히 참아 견딤〔安受苦忍〕, 여러 참을성의 원인을 관찰할 줄 아는 힘〔諦際法忍〕의 세 가지로 나뉜다.

      보조국사 지눌은 《진심직설(眞心直設)》이라는 저술 속에서 무심 공부를 강조한 곳이 있다.
      무심 공부를 할 처음에는 자신의 공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가장 미워하는 대상을 떠올렸다.
      그때 노엽고 슬픈 생각이 떠오르면 잘못된 공부이며, 무심하게 느껴지면 도의 단계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지눌 선사는 다음과 같이 비유하였다.

      "길이 잘 들여진 소는 논에 풀어놓아도 결코 나락을 밟는 일이 없다.
      논두렁의 길을 조심스레 밟고 지난다.
      그러나 길들이지 못한 소는 아무리 때려도 짓밟고 날뛰는 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미움이나 사랑 등이 일어나지 않게 길들임이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길들여진 상태에서는 무심한 세계가 펼쳐진다.

      ④ 근(勤)은 번뇌 앞에 무방비 상태인 우리 중생들이 노력해 나아가는 정신을 말한다.

      ⑤ 정(定)은 한군데로 마음을 집중시킨다는 뜻이다.
      이를 선가(禪家)에서는 심원의마(心猿意馬)라고 한다.
      우리 마음은 원숭이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뜻은 말처럼 달려나가려고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마음은 외부 지향적이기에 붙들어 매어야 한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정(定)이다.

      ⑥ 혜(慧)란 사물과 우주의 실상을 파악하는 힘이다.
      종교를 신행함에 있어 알지 못해 맹신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것은 지혜의 결핍 때문이며 불교에서는 이 지혜를 반야라고 본다.

      ⑦ 방편(方便)은 도를 얻기 위한 우회적 수법으로 보시· 지계· 인욕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⑧ 원(願)은 마음에 품고 있는 '큰 바램'이다.
      우리의 현실은 원을 상실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10년, 100년의 대원(大願)을 가슴에 품고 역사를 사신 조상들에 비해, 우리는 하루를 급급하게 살아가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바람은 '부처가 되리라'는 것이겠지만 소박하게 생각하더라도 저마다의 꿈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⑨ 힘〔力〕은 지님을 말한다. 진리를 얻기 위한 힘, 불의를 항복 받는 힘을 말한다.

      ⑩ 지(智)란 분별지를 초월하는 절대완전의 반야지를 일컫는다.
      이상과 같은 십바라밀의 실천수행에 의해 번뇌를 끊고 절대진리를 증득할 수 있다.

      유식학파의 성립
      불교가 중국대륙을 통하여 아시아로 퍼졌음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어느 학자가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중화'라는 거대한 사상 속에 융해되어 버린 불교를 안타까이 여겨 지적한 말이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는 생명의 나고 죽음을 벗어나기 위하여 해탈이 등장하지만, 중국에서는 윤회를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견해이다. 인도인들이 명상적이고 은둔적 기질을 갖고 있었음에 비해 중국인들은 구상적(具象的)이고 현세이익적 경향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윤회를 고통이라기보다 기쁨으로 생각했다. 내가 다시 죽어,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가문에 태어난다는 일이 고통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국민성의 차이는 결국 불교교리의 굴절을 가져다주고 말았다. 중국인들은 근본교리까지 부정하는 셈이다.

      결국 인도불교가 중국에 들어가 중국화 되어 이 땅에 들어 왔을 때는 두 번 굴절이 된 것이다. 그 중국화의 과정 가운데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바로 불교경전의 번역이다.

      인도어를 중국어로 번역한 최초의 인물은 인도승려 구마라집이었다. 후에 현장스님이 인도에 가 유식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중국인 최초로 역경사업에 매진하였다. 중국인 입장에서 번역하게 되었으므로 이때부터를 중국불교가 토착화되는 시기로 파악함이 옳을 듯하다. 현장은 인도유학을 통해 나란다(nalanda)에서 유식불교를 공부하였다.

      유식불교의 대가였던 계현(戒賢)에게서 직접 배울 수 있었다. 중국으로 다시 귀환할 때 그는 수많은 인도원어 불전을 함께 갖고 돌아왔다. 그는 인도불전을 중국어로 번역하였을 뿐 아니라, 유식불교를 중국 땅에 처음으로 소개하였다. 그가 펼친 유식불교의 종파가 법상종이며 그는 법상종의 종조가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법상종이 원측대사로부터 비롯된다.
      경주가 고향인 그는 6세에 출가하여 9세에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수도를 하였다.
      중국어, 산스크리트, 팔리어, 몽고어, 티베트어 등 당시 6개 국어에 능통했다고 전해지며 중국에서는 생불(生佛)로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본디 유식사상은 미륵(彌勒)· 무착(無着)· 세친(世親) 등에 의하여 성립되었고, 중국에서는 현장의 사상과 원측의 사상으로 이분되기도 하였다.

      현장은 오성각별설을 주장하여,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 성품이 있어 성불에 늦고 더딤이 있다고 주장한 반면, 원측은 본래 성품은 하나이기에 성불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또한 현장은 아뢰야식의 허무성을 인정했으며, 제9아말라식이 있어서 아뢰야식을 통솔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원측은 그와 같은 입장을 거부하였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원측의 유식교학은 중국 땅에서 배척을 받게 된다. 그의 많은 저술들이 사라져 버린 것도 그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신라 법상종은 그후 경흥, 태현 등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그러나 현학적인 교리체계 때문에 일반인들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고, 고려초기에는 교종의 대표 격인 천태종으로 흡수 통합되었다.

      결국 이러한 학문적 대립을 통해 유식불교의 이론은 동양 3국으로 널리 전파되기에 이른다. 유식사상의 진정한 의미는 먼저 무명의 마음을 각자 느끼고, 자신의 본성이 진여임을 깨달아, 스스로 청정한 진여의 세계를 이루어 성불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유식 사상-십바라밀다(十波羅密多).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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