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卍-불법을만나고/卍-법문의도량709

내 마음을 알아야 부처님의 진짜 제자다,-혜암스님 내 마음을 알아야 부처님의 진짜 제자다,-혜암스님 모든 중생들이 자기 직업상 분주를 떨며 명이 줄고 있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간만큼 명이 줄어드는 것이 마치 물이 줄어들고 있는 고기 신세와 같습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무명업식 어두운 생각으로 꽉 차 몇 만 년 살 것처럼 분주를 떨며, 할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심히, 그리고 깜깜히 넘어갑니다. ​ 배고픈데 밥을 안 먹으면 살겠습니까. 어린아이도 배고프면 밥을 찾아 먹고 추우면 옷을 찾아 입습니다. 할일을 안 하는 사람은 밥도 먹지 말고 옷도 입지 말아야 합니다. 제 밥도 아닌데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면서 어찌 할 일은 안 하느냐 말입니다. ‘할 일을 안 하면 밥을 굶고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그런 생.. 2022. 3. 24.
참선은 성불의 지름길,-성철스님 참선은 성불의 지름길,-성철스님 이제까지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계속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마음을 깨치려고 하면 여러 방법이 있는데 교(敎)에 있어서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삼승십이분교〉가 벌어지고 또 선(禪)에 있어서는 언어 문자를 버리고 바로 깨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의 근본 입장에서 볼 때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 이미 알아 맞혔다 해도 까닭 없이 땅에서 넘어져 뼈를 부러트리는 사람입니다. 하물며 덕산스님이 비 오듯이 몽둥이로 때리고 임제스님이 우뢰 같은 할(喝)을 한다 하여도 곽 속에서 눈을 부릅뜨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 송장이 곽 속에서 아무리 눈을 떠 봐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법상에 앉아서 쓸데없이 부처가 어떻고 선이 어떻고 교리가.. 2022. 3. 23.
참으로 가족을 위하는 것은 참선이다,-혜암스님 참으로 가족을 위하는 것은 참선이다,-혜암스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참선하는 것이 오히려 효도가 될 수 있습니다. 죄 짓고 죽은 부모들이 지금 독사 밥이 될 처지에 있는데, 참선해서 그들을 구해야 할 것 아닙니까. 큰절에서 내가 스님들에게 소리칩니다. 자신을 위해서 중노릇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죽은 선망부모의 혼들이 지금 내 고손자, 증손자들이 빨리 깨쳐 살려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부모는 어떻게 하려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자신이 참선을 하면 지옥 떨어져 있는 우리 조상들이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집안일을 돕는 것이 부모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 ​ 중국의 방거사와 단하 천연 선사가 함께 과거를 보러 가다가 마조스님을 만나, 마조스님에게 그런 과거를 보지 말고 네 마음 깨치는.. 2022. 3. 21.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니, 이것은 무엇인가?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니, 이것은 무엇인가? 한 조각 그믐달이 겨울 숲 비추니, 몇 개의 백골들이 쑥 사이에 흩어져, 옛날의 풍류는 어디에 있는가. 덧없이 윤회의 괴로움만 더해 가는데, 누더기 더벅머리로 올연히 앉았으니, 부귀니 영예니 구름 밖에 꿈이로다. 쌀독에 양식은 하나 없지만 만고의 광명은 대천세계 비추네. 물 긷고 나무하는 일은 옛날 스님 가풍이요, 텃밭 메고 주먹밥은 참 사는 소식이라. 한 밤에 송곳 찾아도, 오히려 부끄러워 깨닫지 못함을 한숨지며 눈물로 적시네. 몸 망쳐 도를 없애는 데는 여색이 으뜸이라, 천번 만번 얽어 묶어 화탕지옥 들어가네. 차라리 독사를 가까이 할지언정 멀리 둘지니, 한 생각 잘못 들어 무량고통 생기도다. 어둔 방에 혼자서 보는 이 없다 말라. 천.. 2022. 3. 20.
죽고 싶은 사람들에게,-원성스님 죽고 싶은 사람들에게,-원성스님 자살. 진정 스스로 죽어야 할 것은 생명이 아니라,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자기의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감정이다. 모든 삶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간이 겪어야 하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껍질에 불과한 우리의 육신은 길게는 구십년 후 짧게는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게 되기도 합니다. 신은 불공평하게 누구는 병든 채 태어나고 누구는 오래 살고,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죽게 만들었습니다. ​ 누구는 부잣집 아들로, 누구는 추한 여자로, 누구는 장애인으로 누구는 사창가 여자로, 알코올 중독자로- 이보다 더 많은 삶들이 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 지구란 땅덩어리 위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은 수천수만 전 세계 모든 삶에게 각기 다.. 2022. 3. 19.
인과법칙(因果法則)과 시절인연(時節因緣) 인과법칙(因果法則)과 시절인연(時節因緣) 높은 직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그 직을 물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폭력, 뇌물, 질병, 각종 사고 등등 갖가지 이유가 있지만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 인과(因果)의 결과이다. 진리로 움직이는 이 우주에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당사자는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참 한심스럽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 전생의 업(業)이 작동한 것이다. 이 세상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진리에 따라 움직인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세상 법칙이다. 인과법칙 하나만 제대로 알고 실천하면 세상을 가장 멋지게 살게 된다. 명심보감에 '종과득과 종두득두 천망회회 소이.. 2022. 3. 17.
인생의 최상의 가치,-청화스님 인생의 최상의 가치,-청화스님 진여불성 자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 인생의 최상의 가치이다. 그 자리를 우리 중생은 보지 못하지만 성자는 그 자리하고 항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행복은 우리 인생의 최상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 자리를 느끼고 그 자리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핵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인류가 피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나와 남이 본래 둘이 아니고 천지우주가 오직 하나의 생명체이다.' 라고 하는 부처님 지혜로 가야만 핵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고, 동시에 인간끼리 단체끼리 화합도 이루어집니다. 부처님 지혜로 해야 만이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나와 남이 둘로 보는 서구적인 사상, 서구식의 분열로 보는, 이것저것을 둘로 보고 셋으로 보는 그런 사고방식 .. 2022. 3. 16.
진실한 공덕은,-월하스님 진실한 공덕은,-월하스님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무엇이든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만약 형상이 없다고 한다면, 어둡고 밝은 것이 어떤 인연과 거래가 있다고 할 것이냐 궁금하기 한량 없습니다. 모든 일이 사람의 마음으로 인해 통하기도 하고 막히기도 하고, 장애가 생기기도 하고 애로가 쉽게 해결되기도 합니다. ​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기가 지은 만큼 복을 받기도 하고 잘못하면 벌은 받는 것이지, 다른 누가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주듯 복을 짓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벌을 받는 것도 누가 다른 사람이 떠밀어 주듯 받는 것도 아닙니다. 행동을 잘못하면 스스로 벌이 되는 것이고, 행동을 잘하고 마음을 잘 쓰면 복이 스스로 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행동하면 복이 되고 어.. 2022. 3. 15.
설법이란 무엇인가,-혜암스님 설법이란 무엇인가,-혜암스님 설법이란 한 말로 해서 의사가 약을 쓰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의사가 약을 쓰는 방법이란 눈 아픈 사람에게는 안약을 쓰고 체한 사람에게는 소화제를 주고 머리 아픈 사람에게는 진통제를 주듯이 병에 따라 각각 약이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 이와 같이 석가세존의 설법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 큰 놈은 큰 것이 병이기 때문에 작게 만들고 작은 것은 작은 것이 병이기 때문에 크게 만들고, 어두운 놈은 어두운 것이 병이기 때문에 밝게 만들고 굽은 놈은 굽은 것이 병이기 때문에 곧게 만들고 낳은 놈에게는 무상을 일러주고 죽은 놈에게는 불멸을 깨치도록 하는 등 하나도 일정한 설법이 없는 것이 석가세존의 사십구 년간 설법이란 말입니다. ​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정한 법 없는 것이 이름.. 2022. 3. 10.
자기 자신에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라,-법정스님 자기 자신에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라,-법정스님 눈부신 봄날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생애에서 이런 기회가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한때이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설 때마다 늘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언젠가는 제가 이 자리를 비우게 되리란 걸 예상하게 됩니다. 오늘 만남을 고맙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길상사, 여기는 연등이 너무 많이 걸려서 꽃과 잎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는데, 꽃을 머금은 나무와 풀들은 이 봄을 맞아 저마다 자기 꽃을 활짝 펼치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처음 잎을 내보일 때는 저마다 특성에 따라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자기 빛깔을 내뿜습니다. 한참 지나면 초록은 동색이 되지만, 처음 잎을 펼칠 때는 그 나무가 지닌.. 2022. 3. 9.
마음 다스리는 법,-법정스님 마음 다스리는 법,-법정스님 수행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괴로움은 잘못된 마음, 어리석은 마음에서 빚어집니다. 이런 마음을 버리고 바른 견해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이것을 우리는 '마음을 다스린다.' 라고 말합니다. 이는 마음이라는 게 어떤 실체가 있어서 그것을 컨트롤한다는 게 아닙니다. 내가 옳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잘못되고 어리석은 생각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잠을 잘 때 꿈을 꾸기도 합니다. 꿈은 마음이나 생각이 짓는 것입니다. ​ 그런데 꿈을 꾸면 그것이 실제 상황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꿈에서 깼을 때에는 그것이 꿈인지 알지만, 꿈속에서는 그것이 꿈인지 모르지요. 꿈에서 강도를 만나서 무서워서 도망을 가고, 또 누군가가 나타나 나를 강도로부터 구해.. 2022. 3. 8.
수도자에게 주는 글 – 상주불멸(常住不滅),-성철스님 수도자에게 주는 글 – 상주불멸(常住不滅),-성철스님 부처님께서 도를 깨치시고 처음으로 외치시되 '기이(奇異)하고 기이하다. 모든 중생이 다 항상 있어 없어지지 않는〔常住不滅〕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구나! 그것을 모르고 헛되이 헤매며 한없이 고생만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고 하셨다. 이 말씀이 허망한 우리 인간에게 영원불멸의 생명체(生命體)가 있음을 선언한 첫 소식이다. 그리하여 암흑 속에 잠겼던 모든 생명이 영원한 구제의 길을 얻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으랴. 억만 겁이 다하도록 예배드리며 공양 올리고 찬탄하자. ​ 영원히 빛나는 이 생명체도, 도를 닦아 그 광명을 발하기 전에는 항상 어두움에 가리어서 전후가 캄캄하다. 그리하여 몸을 바꾸게 되면 전생(前生)일은 아주 잊어버.. 2022. 3. 6.
하나의 법, 그 하나는 무엇인가,-청화스님 하나의 법, 그 하나는 무엇인가,-청화스님 참다운 하나의 자리, 이른바 참선법으로 말하면 본래면목자리, 또는 모든 분별을 떠나버린 참다운 참사람 자리, 이런 자리는 말이나 문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말이나 문자를 초월한 그런 자리란 말입니다. ​ 우리 중생들이 분별하고 남한테 전달하고, 그렇기 위해서 문자로 표현도 하고, 또는 책도 내고 하는 것이지, 참다운 진리는 그와 같이 문자나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 그러나 부처님 자리나 우리 마음은 똑같은 자리입니다. 불교에서 가장 해독하기가 어려운 것이 어떻게 해서 우리 마음이 부처일 것인가. 그러면 부처는 무엇인가. 부처는 말로 표현하면 오직 하나의 진리란 말입니다. 이 우주라는 것은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는 바로 일미평등.. 2022. 3. 5.
부처님 법으로 돌아가자,-성철스님 부처님 법으로 돌아가자,-성철스님 부처님 법(法)으로 돌아갑시다. 삼계(三界)의 도사(導師)이시며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 부처님은, 불교 만대(萬代)의 표준(標準)입니다. 무상대지(無上大智)와 무애혜안(無碍慧眼)으로 통찰(洞察)하여 제정(制定)하신, 숭고하고도 장엄한 부처님의 법은, 참으로 삼계의 지침(指針)이며 사생의 등불이니, 불자(佛者)의 절대적(絶對的) 의지처(依持處)입니다. ​ 그러므로 어떠한 제도도 부처님 법에 위배되는 것은, 불교의 반역이며 파괴이니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만약 교단내에 부처님 법에 어긋난 점이 있다면, 이를 단연코 시정(是正)하여 부처님 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참 불자입니다. 청정(淸淨)한 계율(戒律)을 견지(堅持)하여 훼범(毁犯)하지 말라고 하신, 부처님의 최후 유촉은.. 2022. 3. 4.
세월과 인생,-법정스님 2022. 3. 3.
인과를 초월하는 것이 도입니다.-혜암스님 인과를 초월하는 것이 도입니다.-혜암스님 인과를 초월하는 것이 도입니다(상)-혜암스님 ​ 이 연결은 연결이 아닌 연결이요 이 화합(모임)은 모임이 아닌 모임이더라. 연합이 멸하여 다 한 곳에 뚜렷이 밝은 한 물건은 분명하더라. 모이고 갈리고 하는 것이 본래 본문자리에서 있을 수가 있습니까. 꿈이지요, 꿈. 꿈이 아닌 소식을 알아야 바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고, 산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나고 나는 곳에 이런 짓거리를 해 가지고 수지가 맞겠습니까. 이런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반야심경에 전도몽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꾸로 산다. 세간과 출세간의 길이 한 길인 동시에 세상의 길은 동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면, 출세간의 법은 분명히 서쪽으로 가는 길입니다. ​ 속세란 무슨 말입니까. 꿈속에 사는 .. 2022. 3. 2.
부처란 무엇을 가리킨 말인가,-혜안스님 부처란 무엇을 가리킨 말인가,-혜안스님 부처란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니요 형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란 영혼이 있는 것도 아니요 영혼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란 아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요 아닌 것 없는 것도 아닙니다. 공한 것이 부처가 아니요 공한 것 아닌 것도 부처가 아닙니다. 부처란 사람도 아니요 신도 아니요 범천도 아니요 성현도 아니요 각(覺)도 아니요, 부처란 실로 부처도 아닌 것이 '부처'입니다. ​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일체 모든 상(相)을 여의어 본 이름이 부처'라고 하였고, 또 법성게에도 '구래(久來)로 등하지 않는 것이 이름이 부처'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면 이러한 부처가 어떻게 설법을 하였을까? 하고 의심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는 설법을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 2022. 3. 1.
세상 모든 일을 한번 쉬어라,-혜암스님 세상 모든 일을 한번 쉬어라,-혜암스님 세상 모든 일을 한번 쉬어라(上) ​ 눈으로 보아도 보는 상이 없으면 분별이 없고 귀로 듣고는 듣는 분별상 없으면 시비가 끊어진다. 시비분별을 한꺼번에 모두 놓아버리면 청산은 적적한데 밤 달만 밝도다. 目無所見無分別 聽無聲絶是非라 分別是非都放下하면 靑山寂寂夜月明이라​ 종심從諗 조주趙州 선사는 남전南泉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남전스님은 마침 침상에 누워 쉬는 참이었다. 젊은이를 보고는 그냥 누운 채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는 서상원瑞像院이라는 절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이에 남전스님이 다시 물었다. “서상원이라, 그래 상서로운 모습을 보기나 했나?” "상서로운 모습은 못 보고 다만 누워서 졸고 있는 여래를 보았을 따름입니다." 조주의 뜻밖의 대답에 남전스님.. 2022. 2. 28.
안 된다는 그 마음을 내려놓으라.-무각스님 안 된다는 그 마음을 내려놓으라.-무각스님 공부를 하다 보면 공부가 잘 되다가도 문득 ‘공부가 뭔지 모르겠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도대체 이 공부가 뭔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도 있습니다. 왜 이 공부를 하는가, 공부해서 무엇 하나, 공부 하지 않아도 살고, 심지어는 안하는 사람들이 더 잘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만들어낸 장애입니다. 마음속에서 생기는 의혹은 공부를 망가뜨립니다. 공부에 대한 회의가 드는 것, 이것은 그야말로 큰일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성도를 이루시기 전 모든 유혹으로부터 항복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의혹이었습니다. ‘지금껏 그 누구도 깨달음을 이룬 사람이 없었다. 과연 깨달음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2022. 2. 27.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혜암스님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혜암스님 태어나면서부터 거지였던 어떤 노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보광불 부처님이 제자 만 명을 데리고 절에 갔다가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선방을 지어 주면 그보다 더 큰 공덕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능력 없는 노파였지만 스님 한 분이라도 공부할 수 있는 집을 짓겠다는 발원을 세웠습니다. 그때부터 노파는 손바닥이 다 닿도록 일을 해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곤 부처님에게 가서, 이 보잘 것 없는 토굴에서 공부를 하시게 하였답니다. 삼장 법사가 그 곳에서 공부한 공덕으로 노파는 천상으로 올라가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까지 한량없는 복을 받았답니다. ​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어느 날 노파가 부처님께 다음날 사시 공양을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허락을 했는데, 마침 그때 왕에.. 2022. 2. 26.
자비로써 보시하자.-일타스님 자비로써 보시하자.-일타스님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경전을 통하여,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세 가지 보시 중 그 어떤 보시라도 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제자답게, 힘에 따라 형편에 따라 법과 재물을 은혜롭게 베풀 줄 알아야 한다. 꼭 부처님께서 시켰기 때문에 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재물과 법을 베풀어서, 나와 중생의 마음 밑바닥에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간탐심을, 보리심으로 바꾸어놓아야 한다. 우리 모두 자비로써 보시하자. 그리고 그 자비를 더욱 승화시켜 동체대비를 이룰 수 있도록 하자. ​ 동체대비! 그것은 한 몸의 사랑이요, 동체대비에 입각한 보시는 내가 나에게 주듯이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보시이기에 여기에는 주는 사람, 받는.. 2022. 2. 25.
우주에 가득 찬 광명의 빛,-청화스님 우주에 가득 찬 광명의 빛,-청화스님 염불에 일념이 되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다른 이름도 무방합니다. 지장보살도 무방합니다. 부처님 이름은 다 신통합니다. 다 신통한 것인데 이른바 부처님의 총대명사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운 쪽으로 우주의 인력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한번 부르면 부른 만큼 우리한테 행복이 옵니다. ​ 부처님께서 직접 지으신 부처님 명호는 우주의 생명을 다 담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하면 우주생명과 상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명호부사의名號不思議라, 부처님 이름 자체가 불가사의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염불만 한다고 하면 얼마나 큰 공덕이 있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학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도인 말 듣고 하는 그런 큰스님도, 하루에 .. 2022. 2. 24.
당신의 운명이 좋지 않으면,-정공법사 2022. 2. 23.
무아의 수행,-청화스님 무아의 수행,-청화스님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에도 나를 떼기가 하도 어려운 것이니까, 우리 수행법 가운데서 일반 대중한테 제일 말씀을 많이 하신 방편법문(方便法門)이 부정관(不淨觀)이나, 또는 수식관(數息觀) 즉 호흡관입니다. 우리 중생은 원래 욕계산지(欲界散地)라, 욕계(欲界)에서는 마음이 고요하게 하나로 모아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욕계를 산지(散地)라고 합니다. 우리 중생들은 욕계산지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선하기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앉으면 그냥 천만가지 생각만 나부낍니다. ​ 부정관은 내 몸뚱이가 맑지가 않고 청정하지 않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고집할 때는 '내 몸뚱이가 아주 귀엽구나, 눈이 곱구나, 입이 곱구나, 모두가 곱다' 하는 것이고 남녀 이성 관계도.. 2022. 2. 22.
심외무불 촉목개법(心外無佛 觸目皆法)-미상 심외무불 촉목개법(心外無佛 觸目皆法)-미상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진리이다. ​ 불교에서는 성불(成佛)을 지상의 목표로 삼는다. 부처가 되는 것이 제일의 소원이며 목표다. 그래서 불자들은 남녀노소 승속 모두가 만나서 인사를 할 때, 반드시 “성불하십시오”라고 인사한다. ​ 그런데 그 부처라는 것이 실은 자신의 마음이다. 마음 이외에는 달리 부처가 없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심외무법(心外無法)이다. 마음밖에는 따로 법이 없다. 마음밖에는 진리도 없고 도도 없다. 또한 마음밖에는 참선도 없고 염불도 없다. 최고의 행복도 없고 평화도 없다.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삶도 마음을 떠나서는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마음이며, 마음이기 때문에 다 진.. 2022. 2. 21.
마음에 속지 않으려면 무명심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숭산스님 마음에 속지 않으려면 무명심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숭산스님 무명(無明)이란 밝지 못한 마음, 가려진 마음이다. 밝지 못한 마음이 나면 본래 밝고 깨끗한 자기를 잊어버리고 바깥 경계에 동요하게 된다.​ 어떤 처녀가 한 농군을 보았다. 인물이 훤칠하게 잘 생겼고 직분도 좋고 가문도 좋았다. 남이 알까 모르게 사랑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아, 저런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남몰래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고 싶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습니다.’ 상대방도 그 편지를 받고 알아들었다. “좋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나를 좋아한다면 언제 한 번 만납시다.” 그렇게 해서 만나고 나니 마음이 더욱 통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저를 어떻게 내 애인을 만들.. 2022. 2. 20.
현세 인생(現世 人生)에 대하여.(1.2)만공선사 현세 인생(現世 人生)에 대하여.(1.2)만공선사 인간의 일생은 짧은 한 막의 연극에 지나지 않는데, 이 연극의 한 장면이 막이 되면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연출하던 그 의식은, 그만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리고 육체는 부글부글 썩어버리니,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 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그 동안 인들 일분의 자유가 있었던가? 밥을 먹다가 라도 불의(不意)의 죽음이 닥치면 씹던 밥도 못 삼키고 죽어야 하고, 집을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찬란하게 짓다가도, 느닷없이 화재(火災)라도 만나면 방 안에 한 번 앉아 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되지 않는가? ​ 직접 내 자신의 일에도 이렇게 늘 자유를 잃어버리는데, 인생의 집단인 사회와 국가를 세운다는 일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자유의 바탕을 얻어야 근본적 자유를 .. 2022. 2. 19.
자연을 향해 나를 열어두라,-법상스님 자연을 향해 나를 열어두라,-법상스님 우리의 본질은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정해진 실체적인 ‘나’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라는 말처럼, 우리에게 정해진 자성은 없지만 그렇기에 인연을 따라 다양한 것을 이루기도 합니다. 나를 얼마나 활짝 열어놓느냐에 따라 우리는 비좁은 내가 될 수도 있지만, 무한하고도 드넓은 가능성의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나를 가두지 않고 확장하면서 활짝 열어놓을 수 있을까요? 그 하나의 방법으로, 자연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자연과 교감하는 삶을 사는 것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좁은 곳에서 벗어나 드넓은 세상 바라보며 대자연과 공명한다면 무한한 나를 체험할 것 ​ 보통 우리가 일상적일 때는 자연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합.. 2022. 2. 18.
불교는 '나'를 찾는 일에서부터,-일타스님 불교는 '나'를 찾는 일에서부터,-일타스님 그렇다면 이러한 '나'를 유아독존의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참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삶이라 할 수 있는가?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나'에 대한 물음과 '아니다'라는 대답. 이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작된다. '나'를 찾는 사색과 '나'를 찾는 일. 바로 여기에서부터 불교는 시작되는 것이다. ​ 녹야원에서 최초의 다섯 비구를 탄생시킨 석가모니불은, 갠지스강 건너에 있는 마가다국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부처님은 밀림속으로 들어가 큰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하고 계셨는데, 마침 이 고장의 상류층 젊은이 서른 명이 그 숲으로 놀러 왔다. 저마다 아내를 데리고 왔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한 젊은이는 기생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 그런데 그 기.. 2022. 2. 17.
생명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성철스님 생명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성철스님 일체 만법이 본래 불생불멸(不生不滅)이어서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거래(去來)가 없고, 생명(生命)도 거래(去來)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화엄(華嚴)에서도 "일체법불생(一切法不生)이요, 일체법불멸(一切法不滅)"이라 하였고, 법화(法華)에서도 "제법(諸法)이 종본래(從本來)로 상자적멸상(尙自寂滅相)"이라 하였는데, 이 적멸상(寂滅相)은 생멸(生滅)이 끊어진 불변상(不變相)을 말함입니다. 이 불생불멸을 진여(眞如), 법계(法界), 연기(緣起), 실상(實相), 법성(法性), 유식(唯識), 유심(唯心) 등, 천명만호(千名萬號)로 이름하나 그 내용은 다 동일합니다. 이는 우주의 근본원리이며, 불타(佛陀)의 대각 자체(大覺 自體)이어서 일체 불법(一切佛法)이 불생불.. 2022. 2. 15.